Page 48 - 대한사랑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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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독립운동가’라도 시켜달라고 해서 몇 년 만에 헐버트 박사가 2003년에 외
국인으로는 최초로 이달의 독립운동가 됐어요. 그 이후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거예요.
최원호 : 이런 대한민국에 대해 헐버트 박사는 끝까지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죠?
김동진 : 그렇습니다. 1949년에 이승만 정부로부터 8.15 광복절 기념식 초청을 받
게 돼요. 그래서 이분이 한국에 간다고 하니까 매사츄세츠 보스톤 밑에 있는 스프
링필드에 ‘스피링필드유니온’이란 신문사의 기자가 찾아왔다고 해요. 그때 헐버트
박사의 나이가 87세였는데, 이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나왔던 얘기예요. 이게 헐버트
박사의 마지막 기자회견인데요. 여기서 대한민국의 우수성 5가지를 언급해요. 첫
째가 거북선, 그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말했어요. 그다음에 조선의 기록문화와 이민
족 흡수 문화를 말합니다. 조선이 중국에 동화되지 않고 문화를 완전히 흡수를 했
다는 거예요. 마지막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얘기했는데 3.1운동은 세계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국심의 본보기라고 평가를 했어요.정말
최원호 : 정말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보이네요.
김동진 : 그 회견 뒤에 바로 워싱턴 대사관에 가서 장면 대사를 만나서 이승만 대통
령의 초청장을 들고 기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오거든요. 그때 기차 안에서 AP
통신 기자한테 한 얘기가 유명합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트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이제 이 얘기를 AP통신이 타전을 한 거예요.
최원호 : 그런데 공교롭게도 헐버트 박사가 1949년에 초청을 받아 들어오셔서 일
주일 만에 돌아가시잖아요.
김동진 : 예. 1949년 7월 29일에 인천항에 도착을 해요. 바로 다음 날 청량리에 있
는 위생병원에 입원을 해요. 옛날에는 그게 큰 병원이었어요. 근데 이틀 정도 되니
까 돌아가실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8월 2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프란
체스카 여사하고 방문을 하죠. 그때 감리교회 초대 선교사였던 아펜젤러 딸이 같
이 병문안을 왔어요. 그 딸하고 병원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남아 있어요. 그리고
거기서 쓴 유서가 남아 있어요. 그 유서를 타이프를 쳤는데, 서명을 보면 환자가 쓴
글씨체로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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