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대한사랑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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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가 JP모건체이스 은행 한국 대표를 하던 1999
년에 기념사업회를 조직했는데, 그 이후 국내은행에서 스카웃 제의가 와서 외환은
행 부행장과 시중은행 은행장 등을 거쳐서 60살이 되던 2009년에 은퇴를 했어요.
대개 우리 직업은 65세나 70세에 은퇴를 잡거든요. 빨리 은퇴를 해도 대개 요즘은
펀드 회사나 개인 금융회사를 하는데 저는 기념사업회만 하고 있죠. 근데 사실상
1999년부터 이 일에 매진을 했어요. 『THE HISTORY OF KOREA』도 1992년쯤에
미국에서 찾은 거예요.
최원호 : 그런데 아무리 인연이 있다고 해도 회장님은 금융인 출신이신데요. 왜 이
렇게 헐버트 박사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시는 건가요?
김동진 : 예. 저는 사실 역사학자가 아니고 금융인이잖아요. 전공자도 아닌 제가 왜
해야 할까? 그렇지만 제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던져봤어요. ‘도대체 헐버트 박사가
어떤 인물이길래 알리려고 하나?’ 제가 판정을 내린 게 헐버트 박사는 ‘독립운동사
에서는 안중근 반열’이고, ‘한글 연구와 보급에 있어서는 주시경 반열’이고, 아리랑
에 있어서는 ‘고전 음악의 중시조’다. 그리고 역사학에 있어서는 ‘박은식과 신채호
의 반열’이고 학문과 학자의 유형으로는 ‘최치원과 정약용’에 버금가는 분이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내 사재를 다 털어서라도 이분을 알리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우리 역사가 이분을 기록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헐버트 박사가
한국 역사에서 젊은이들한테 가장 큰 울림을 남긴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오죽하면
헐버트 박사의 손녀 사진 헐버트 박사의 『THE HISTOR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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