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대한사랑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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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트 박사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때는 내가 다니는 직
                      장의 대표로서 기념사업회를 출발시킬 때여서 후원을 받았던 거죠. 미국 사람들 돈

                      받아서 헐버트 박사의 기념사업회를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근데 벌써 25년
                      됐어요.



                      최원호 : 그런데 근래에 광복 후에 이미 <헐버트기념사업회>가 출범한 사실이 있었

                      다는 것을 확인하셨다고요?
                      김동진 : 예 몇 년 전에 알게 되었는데요. 이미 1949년에 <헐버트기념회>라는 게 있
                      었더라구요. 당시 발기인 대표만 50명이었어요. 발기인 대표에 보면 윤보선, 백낙

                      준, 유진호, 이기봉 등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아시는 분들이 참여했더라고요.
                      이승만과 이시영만 안 들어갔는데, 그분들은 당시 대통령, 부통령이어서 빠졌고 당

                      시 우리나라 지성인들이 총망라되어서 참여를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분들이 이구
                      동성으로 ‘헐버트 박사에 대한 감사는 민족 최대의 의무다.’라고 했어요. 그 공훈을
                      자손만대에 알려야 한다고 하면서 결의문을 채택했더라고요.



                      최원호 : 당시 광복 후의 대다수 주요 인사들이 헐버트 박사의 독립운동 기여와 한

                      국 사랑에 대해 아셨다는 거군요?
                      김동진 : 예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의문에 참여한 50인 명단을 찾아냈어요. 헐버

                      트 박사 후손한테서 YMCA에서 <헐버트기념사업회> 결의문을 작성하고 회의도
                      하고 기념사진 찍은 걸 받았어요.



                      최원호 : 그러면 <헐버트기념회>가 처음 만들어진 1949년으로부터 50년 만인
                      1999년에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가 다시 조직된 거네요.

                      김동진 : 그렇게 됐어요. 근데 저는 그걸 모르고 있다가 헐버트 박사 외손녀가 헐버
                      트 박사 서거 58주기 때인 2007년에 왔을 때 건네준 많은 서류 중에서 나중에 발

                      견하게 되었어요. 그해에 바로 찾은 건 아니에요. 왜냐하면 제가 그때 서류가 많아
                      서 혹시라도 불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조심히 보관하다가 나중에 뒤지다가 나왔

                      거든요.



                      최원호 :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장님은 헐버트 박사와 진짜 인연이 있으신 분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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