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대한사랑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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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天柱)에 봉하고 제사를 주관하게 했다. (『화랑세기』)
화랑을 선도(仙徒)라 한 것은 ‘선(仙)의 무리’를 나타내며, 신선의 도인 ‘선도(仙
道)를 구한 집단’이라 할 수 있다. 화랑은 신궁(神宮)을 세우고 그곳에서 제사를 직
접 주관하여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천의식(祭天意識)을 행하였다. 신채호는 “신라
의 화랑은 그 시원이 삼한소도(三韓蘇塗)의 제관이다.”라고 하였다. 화랑은 국가를
수호하는 군사집단일 뿐 아니라 제관으로도 소임을 다한 것인데, ‘이신설교(以神
設敎)’ 내지 ‘천도설교(天道設敎)’라는 말처럼 신이나 하늘과 같은 근원적 세계의 힘
을 부여받아 가르침을 폈던 고대 신교문화의 형태를 엿볼 수 있다. 화랑을 선랑
(仙郞), 국선(國仙), 선화(仙花), 미륵선화(彌勒仙花), 풍월주(風月主) 등의 仙이나 風과 관
련된 다양한 호칭으로 부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신채호는 “화랑은 단군 때
부터 내려오던 종교의 혼(魂)이요 국수(國粹)의 중심이다”라고 하였다. 상고시대로
부터 내려온 풍류문화가 신라에 이르러 화랑이라는 조직체로 화현되었고, 그 맥
을 통해 흐르고 있는 신비성, 종교성, 영명성 등을 간과할 수는 없음이다. 결론적
으로 ‘현묘지도’는 풍류의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면’을 말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
렵고 심오하고 오묘한 그 지극한 경지는 궁극의 근원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실제로 화랑과 관련된 고사를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기행이적들이 많이 나타
나는데, 호국신의 계시에 따라 적국의 사람인 백석의 유인에서 벗어나 목숨을 구
한 김유신(金庾信)의 일화를 비롯하여 귀신의 무리를 이끌고 다리를 놓았다는 비
형랑(鼻荊郞), 아내를 범한 역신(疫神)을 노래와 춤으로 감화시켜 쫓아낸 처용랑(處容
郞), 경덕왕 때 해가 둘이 나란히 나타나 열흘 동안이나 없어지지 아니한 흉조를
향가(鄕歌)인 도솔가(兜率歌)로 해결한 월명사(月明師), 진평왕 때 향가(鄕歌)인 혜성가
(彗星歌)를 지어 별의 변괴를 바로잡아 왜구가 물러가도록 한 융천사(融天師)의 사례
가 그러하다.
2) 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
두 번째, ‘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라는 것은 풍류정신이 유불선(儒佛仙) 삼교
의 외래 사상이 유입되기 이전에 이미 삼교합일(三教合一)의 형태로 존재한 한국
사상의 원형임을 말하고 있다. 유불선이 유입된 후 삼교의 특성을 종합해서 생겨
난 사상이 아니라, 이미 삼교의 특성을 모두 내포한 한민족의 고유 사상이 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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