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대한사랑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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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서」의 주된 내용은 풍류정신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풍류가 화랑문화의 중요
                      한 사상적 기반이 됨을 알 수 있다.

                        화랑도가 풍류정신을 기저에 깔고 있음은 진흥왕 37년(576) 기사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진흥왕이 나라를 흥하게 하려면 모름지기 풍월도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

                           고 생각하여, 다시 명령을 내려 좋은 가문 출신의 남자로서 덕행이 있는
                           자를 뽑아 (명칭을) 고쳐서 화랑(花郞)이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미륵선화·미시랑·진자사>



                        풍월은 풍류와 동의어로써, 진흥왕은 화랑을 중흥시키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풍월도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것은 풍월도라는 문화가 이
                      미 있었고 그것을 우선하여 일으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던 풍월도를 되살려서 화랑의 제도를 만든 것이다. 이처럼 화랑도는 선재

                      (先在)했던 문화적 토대 기반 없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전에 전해오던 문
                      화를 다시 부흥시켜서 되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신라 이전 상고시대로 소급하는 풍류

                        그렇다면 화랑도의 문화적 토대 기반이 된 풍류는 신라 건국 이래 생겨난 것인
                      지, 그 이전부터 계승되어 온 상대(上代) 사상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풍류

                      가 신라 당대의 인물이 주창한 문화 정신이라면 앞서 언급한 최치원이나 진흥왕
                      은 그 인물을 거론했을 터이다. 그러나 신라 당대의 특정 인물을 언급하지 않은
                      것뿐 아니라 풍류는 전승 내력이 있는 문화 정신이기 때문에 이는 신라 이전, 곧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사상으로 봄이 더 합당할 것이다. 신라의 지배 세력인 6촌이
                      이주 세력인 것과 박혁거세가 어린 나이임에도 왕이 될 수 있었던 점, 그리고 박

                      혁거세의 칭호에 담긴 뜻을 감안할 때 그 기원을 유추할 수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조선의 유민’이 경주 일대로 이주해 와서 나누어 6촌을 이

                      루며 살았다고 하니, 6촌은 단군조선에 뿌리를 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삼국
                      유사』에는 “진한 6촌의 조상들은 모두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 같다”고 하였는데,

                      이는 제천문화를 이어오던 천손사상의 반영임과 동시에 한반도를 넘어 대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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