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월간 대한사랑_10월
P. 46

에 <법률 53호>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이라 이름하여 국경일로 정했다.



            커발한 환웅의 신시(神市)개천
            지금의 많은 사람들은 개천절을 단군의 고조선 건국일로 여기고 있다. 이는 대종

            교에서 “한배님이 갑자년 10월 3일 태백산에 강림하여 125년간 교화 시대를 지
            내고 무진년(戊辰年) 10월 3일부터 치화(治化)를 시작했다.”는 문장을 근거로 한다.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기원전 2457년(갑자)에 강림했고, 기원전 2333년(무진)부
            터 치화를 했다’는 의미가 되므로 단군이 기원전 2457년(갑자년) 백두산에서 태어

            나 2갑자(甲子) 120년을 지내고, 다시 5년 뒤인 무진년에 등극하여 개천(開天)을 하
            였다는 뜻이 된다.

            개천에 대해 『환단고기』에서는 초대 커발환 환웅천황의 기원전 3897년 신시(神
            市) 개천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환국의 말기 7세 안파견 지위리환인(智爲利桓仁) 때 인구는 증가하고 물자는 적어 살아갈 방
               법이 없음을 걱정하였다. 서자부(庶子部) 마을에 계시던 대인 환웅께서 민정을 두루 살펴 듣
               고 환국을 떠나 이주하여 광명한 세상을 열고자 하였다. 이때 안파견(安巴堅)께서 백두산은

               홍익인간(弘益人間) 할만하다 하시고 그곳에 가서 개천시교(開天施敎) 하라 명하셨다. 환웅께
               서 천부(天符)와 인(印) 3개를 받아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대흥안령 산맥을 넘어 백두산 꼭
               대기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오시어 도읍을 신시(神市)에 정하시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셨다. 그때 그곳에 선주민인 웅족과 호족이 있어 삼신의 계율을 받드는 신시의 백성이

               되고자 하였다. 환웅께서 쑥과 마늘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주문을 읽어 수행하여 진정한
               사람다운 인격을 갖춘 대인이 되라”고 하였다. 웅족과 호족 양가(兩家)는 이것을 먹고 100
               일 수행을 하고 다시 21일 동안 수행에 힘썼다. 웅족은 굶주림과 추위와 고통을 참으며 하
               늘의 계율을 준수하고 환웅과 한 언약을 지켜서 건강한 여자의 모습을 얻었으나 호족은

               거짓을 일삼고 태만하며 금기를 지키지 않고 하늘의 계율을 어겨 끝내 천업(天業)을 함께
               이루지 못하였다. 웅씨족 여성들은 고집이 세고 어리석음이 지나쳐서 이들과 혼인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매양 신단수 아래에 함께 모여 주문을 읽으며 아기를 가져 환웅의
               백성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환웅께서 임시로 이들을 환족 백성으로 받아들여 살 곳을 주시

               고 환족 남자와 혼인하게 하여 아이를 낳으니 환족의 자손으로 입적시켰다.





          46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