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월간 대한사랑_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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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서 군수와 관할경찰서장, 교육감이 대표로 올렸거든요. 그런데 의회의장의 역

            할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제가 그 문제를 홀기[혼례나 제례 등의 의식의 절차를
            적은 것]를 바탕으로 원만히 풀면서 그때부터 집례관을 맡게 되었어요.



            최원호 : 예. 그런데 원래 처음에는 개천대제가 정부에서 진행하던 의례로 알고 있

            습니다. 지금은 강화군에서 진행하는 행사잖아요?
            최종수 : 맞아요. 조선조 때는 이조에서 관장을 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나와요. 그

            래서 사실 개천절을 맞아 개천대제는 대통령이 와서 총괄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
            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잘 안돼서 인천시장이 지냈던 적은 있습니다. 처
            음에는 개천대제를 잘 안정시킨 다음에 인천시장, 그다음에 대통령을 모시고 싶

            은 생각이 있었죠.



            최원호 : 개천대제 문화를 정립하시는데 노력도 많이 하셨다구요?
            최종수 : 2000년대 들어와서 개천대제 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예산 배정을 요청했

            었구요. 그래서 당시 개천에 대해서 가장 많은 연구서를 낸 경기문화재단 김성환
            박사를 초대해서 학술적 연구를 진행도 했었습니다. 당시 학술 조사를 하니까

            개천대제에 관한 기록이 조선시대 성종 때까지 소급이 되더라구요. 또 한양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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