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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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E 37년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게 된다.
5세기 전반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모두루묘지명(牟頭婁墓誌銘)에서도 “하백의 자손
이며 일월의 아들인 추모성왕께서 원래 북부여에서 나오셨다(河伯之孫이며 日月之子
인 鄒牟聖王이 元出北夫餘라)”하였고 『삼국유사』에서는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전한서
(前漢書)에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 4월 8일에 천제(天帝)가 홀승골성(紇升骨城)
에 내려왔는데 오룡거(五龍車)를 탔다. 도읍을 세워 왕이라 일컫고, 국호를 북부여
라 하였다” 등의 기록을 보면 고주몽성제가 나온 북부여는 국호가 확실하다.
『삼국유사』는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한 BCE 239년을 BCE 59년으로 기술하
여 3갑자 180년을 낮추어 잡아 단군조선과 고구려를 연결하는 북부여 182년의
역사를 회복 불가능하게 왜곡시켰다.
2) 천제지자(天帝之子)와 모하백여랑(母河伯女郞)
태왕비를 보면 고추모를 “천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天帝之子시오 母는
河伯女郞이라)” 하였고 또 “나는 황천의 아들이오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我是皇天之子
오 母는 河伯女郞이라)”고 하였다.
『북부여기』 <6세 고무서(高無胥)단군조>를 보면 고주몽이 동부여를 떠나 차릉수
(岔陵水)에 이르러 강을 건너려 할 때 다리가 없자 강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하
고 있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我是天帝子오 河伯外孫이라)
천제지자(天帝之子), 황천지자(皇天之子) 등은 중국에 예속되지 않은 고구려 중심의
천하관(天下觀)과 천손민족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들어 있다. 하백(河伯)은 송화강
주위의 땅을 다스렸던 지방 장관의 벼슬을 의미하는데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
(柳花夫人)이 하백의 따님이라는 것이 두 기록에 동일하게 나타난다.
3) 부란강세(剖卵降世)
태왕비에는 고주몽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셨다(剖卵降世)고 하였다. 이 난생설화
(卵生說話)는 『위서(魏書)』 권(卷)100의 고구려전(高句麗傳),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卷)3 「동명왕편(東明王篇)」, 『삼국사기』 권(卷)13 <동명성왕 즉위년조>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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