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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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이 문제는 한국, 일본, 중국, 북한의 학자들이 수많은 논문을 써서 각자 나
            름대로 증명을 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속시원한 해답을 내린 자가 없었다. 『환단

            고기』를 보면 고주몽은 북부여의 건국자 해모수의 현손(4세손)이 되고 해모수의
            사당을 지어 그를 태조(太祖)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보면 해모수로

            부터 광개토열제까지가 4세+13세=17세손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오직 『환단고
            기』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6) 이구등조(二九登祚)
            태왕비문에 광개토열제는 18세에 등극(二九登祚)을 하여 39세에 돌아가셨다(卅有九

            晏駕棄國)고 하였다.
            광개토태왕이 18살에 등극하였다는 기록은 『삼국사기』 등에는 나와 있지 않고

            오직 『환단고기』에만 그 기록이 보인다.

                 18세에 광명전에서 등극하실 때 예로써 천악을 연주했다

                 (年十八에 登極于光明殿하시니 禮陳天樂이라)


            이 한 가지 내용만 보더라도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는 대단히 정확하다는 것
            이 증명이 된다.



            7) 영락연호(永樂年號)
            비문에서 “영락태왕이라고 불렀다(號爲永樂太王)”고 하였다. 영락은 광개토열제의

            년호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열제들의 연호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환단고기』에는 고주몽성제(多勿, 平樂), 태조무열제(隆武), 광개토열제(永樂),
            장수열제(建興), 문자열제(明治), 평원제(大德), 영양제(弘武), 보장제(開化) 등 9개의 연

            호가 보인다. 영락연호는 “영락10년(CE 400년) 삼가라가 모두 고구려에 귀속되었
            다(永樂十年에 三加羅가 盡歸我라)”라고 하여 광개토열제의 연호가 永樂임을 밝혀주고

            있는데 오직 『환단고기』만이 이를 밝혀주고 있는 유일한 사서이다.



            8) 급추지임나가라(急追至任那加羅)
            태왕비를 보면 CE 399년 기해년(己亥年) 백제가 왜(倭)와 화통(和通)하여 신라를 공

            격하게 하자 신라는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CE 400년 경자년(庚子年) 광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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