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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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안라인(安羅人)으로 수병(戍兵)
광개토태왕비에는 안라인(安羅人)으로 수병(戍兵)(군사를 주둔시켜 지키게 했다)이라는 말
이 세 번 나온다. 첫째는 대마도의 종발성(從拔城)이 항복하자 안라인(安羅人)으로
수병(戍兵)케 했다고 하였고 둘째, 시라성(始羅城)과 도성(都城)을 공취(攻取)하고 안라
인(安羅人)으로 수병(戍兵)케 했다고 했으며 셋째, 탁순(卓淳), 단마(但馬), 무장(武藏) 등
을 취(取)하고 안라인(安羅人)으로 수병(戍兵)케 했다고 하였다. 안라인(安羅人)은 누구
인가?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기존의 연구내용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 안라(安羅)를 함안(咸安)으로 간주하여 과거에 일부 논자들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
部)의 용병(傭兵)으로 해석하여 왔다. 즉 왜가 장기간에 걸쳐 가야를 점령했다는 근
거로서 이용하고자 했다.
㉡ 라인(羅人)을 신라인으로 보아 신라인을 안치하여 파수병(把守兵)으로 삼았다.
㉢ 라인(羅人)은 임나가라인(任那加羅人)으로 임나가라 사람을 안치하여 파수병으로
삼았다.
㉣ 고구려가 라인(邏人) 즉 순라병(巡邏兵)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안라(安羅)에 대해 『고구려국본기』는 명쾌한 대답을 내려 주고 있다.
(구주에) 안라국이 있었다. 안라는 본래 홀본(忽本) 즉 졸본(卒本)에서 이주
한 사람들이다. 안라국의 북쪽에 아소산이 있다. 안라는 뒤에 임나에
들어가서 일찍이 고구려와 친교를 맺었다.
위의 내용을 보면 안라는 임나 10국의 한나라이고 고구려에서 이주하여 고구려
와 일찍부터 왕래가 잦았기 때문에 광개토열제가 일본을 정벌하고 그들에게 치
안의 유지를 맡겼던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광개토대왕 비문과 『환단고
기』가 진서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환단고기』를 통해 기존 강단사학계가 풀
지 못하는 난제까지도 모두 풀어주는 보배로운 책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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