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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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10) 안라인(安羅人)으로 수병(戍兵)
                      광개토태왕비에는 안라인(安羅人)으로 수병(戍兵)(군사를 주둔시켜 지키게 했다)이라는 말

                      이 세 번 나온다. 첫째는 대마도의 종발성(從拔城)이 항복하자 안라인(安羅人)으로
                      수병(戍兵)케 했다고 하였고 둘째, 시라성(始羅城)과 도성(都城)을 공취(攻取)하고 안라
                      인(安羅人)으로 수병(戍兵)케 했다고 했으며 셋째, 탁순(卓淳), 단마(但馬), 무장(武藏) 등

                      을 취(取)하고 안라인(安羅人)으로 수병(戍兵)케 했다고 하였다. 안라인(安羅人)은 누구
                      인가?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기존의 연구내용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 안라(安羅)를 함안(咸安)으로 간주하여 과거에 일부 논자들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

                          部)의 용병(傭兵)으로 해석하여 왔다. 즉 왜가 장기간에 걸쳐 가야를 점령했다는 근
                          거로서 이용하고자 했다.
                          ㉡ 라인(羅人)을 신라인으로 보아 신라인을 안치하여 파수병(把守兵)으로 삼았다.

                          ㉢ 라인(羅人)은 임나가라인(任那加羅人)으로 임나가라 사람을 안치하여 파수병으로
                          삼았다.

                          ㉣ 고구려가 라인(邏人) 즉 순라병(巡邏兵)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안라(安羅)에 대해 『고구려국본기』는 명쾌한 대답을 내려 주고 있다.


                           (구주에) 안라국이 있었다. 안라는 본래 홀본(忽本) 즉 졸본(卒本)에서 이주

                           한 사람들이다. 안라국의 북쪽에 아소산이 있다. 안라는 뒤에 임나에
                           들어가서 일찍이 고구려와 친교를 맺었다.


                      위의 내용을 보면 안라는 임나 10국의 한나라이고 고구려에서 이주하여 고구려
                      와 일찍부터 왕래가 잦았기 때문에 광개토열제가 일본을 정벌하고 그들에게 치
                      안의 유지를 맡겼던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광개토대왕 비문과 『환단고

                      기』가 진서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환단고기』를 통해 기존 강단사학계가 풀
                      지 못하는 난제까지도 모두 풀어주는 보배로운 책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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