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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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신묘년(391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 가야, 신라를 격파하고
(백제, 가야, 신라를) 신하의 백성으로 삼았다.
일본 사람들은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반도는 본래 4세기 말엽에 왜에게 격
파된 나라이고 임나일본부가 있던 곳이라 하여 정한론(征韓論)의 근거로 삼고 있
다.
그러나 이 해석은 설득력이 없다. 첫째, 4세기 말엽 일본열도는 통일된 나라가
아니어서 강력한 무력을 발휘할 힘이 없었다. 둘째, 광개토열제의 훈적을 기록하
는 비석에 그러한 내용을 기록할 이유가 없으며 셋째, 『삼국사기』 등 우리의 기
록에 그러한 내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의적인 해석은 일본의
교과서에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일본의 박물관을 가보면 버젓이 이러한
해석을 전시하고 있다.
2) 중국인 왕건군의 해석
중국인 왕건군(王健群)도 『광개토왕비 연구(廣開土王碑 硏究)』에서 일본인들과 비슷한
해석을 하고 있다.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
았다.
그는 이렇게 해석을 하면서 다음의 말을 덧붙이고 있다.
왜가 백제와 신라를 신민(臣民)으로 삼았다는 것은 어법에 비추어 볼 때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는 다만 하나의 과장한 말일 뿐 역사적 사실로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역사적으로 볼 때 왜는 당시에 결코 통일된 정
권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제와 신라를 침략한 왜는 다만 북구
주(北九州) 일대의 약탈자라고밖에 볼 수 없으며 그들은 무리를 지어 해
적의 방법으로 한반도 남부에 진입하여 살상과 약탈로 그곳 물건을
탈취했을 뿐이다. 소위 이위신민(以爲臣民)은 다만 일시적으로 압박하다
가 즉시 떠나버린 것이지 결코 국가 사이의 통치 관계를 형성했던 것
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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