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월간 대한사랑_9월호
P. 8
나머지 종이 면을 먹으로 칠해 탁본처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쌍구가묵본은 탁
본하는 사람이 그 글자를 보고 나서 그 모양 그대로 그리는 과정에서 명확하지
않은 글자는 자의적으로 고치거나 가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엄밀하게 정의
한다면 탁본이 아닌 것이다. 이 가탁본(假拓本)은 요코이 다다나오(橫井忠直)의 해석
과 함께 소개되었는데 명치유신 이후 조선침략을 노리던 일본은 마수의 손길을
뻗쳐 비문을 왜곡 해석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글자를 마멸시키는 만행을 저지
른다.
『환단고기』를 편찬한 운초 계연수는 1898년 5월 오동진, 이홍린 등의 재정
적 도움을 받아 이덕수, 김효운, 백선건 등과 함께 탁본을 뜨는데 1802자 중에
서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는 117자 뿐이었다. 그 뒤 1912년 5월에 다시 가서 탁
본을 뜰 때에는 많은 글자들이 마멸되어 있었다. 계연수는 1898년에 뜬 탁본(이
를 「무술등본」이라고 부른다) 내용을 바탕으로 ‘광개토성릉비문결자징실(廣開土聖陵碑文
缺字徵實)’을 지어 그 사이 마멸된 138자를 복원하였다. 이 중 일본과 관련된 글자
가 100여자가 넘고 특히 광개토태왕의 일본열도 정벌에 대한 부분이 집중적으
로 마멸된 것을 보면 일본인들에 의해 태왕비가 크게 훼손되었다는 것은 짐작하
고도 남을 일이다. 1931년 삼육사(三育社)의 회람잡지(回覽雜誌)에 계연수의 ’성릉비
결자징실‘을 게재했다가 압수당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의 편집장 전봉천(全鳳天)은
도주하였고 삼육사는 해산되었으며 관련자들은 구속되었다.
3. 신묘(辛卯)년 조에 대한 정확한 해석
먼저 해석이 다양한 신묘(辛卯)년 조에 대한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 以辛卯年 來渡海破 百殘 ○○新羅 以爲臣民
1) 일본인들의 해석
먼저 일본 사람들의 끊어읽기와 해석은 다음과 같다.
而倭가 以辛卯年에 來渡海하야 破百殘 ○○新羅하고 以爲臣民이라
(일본사람들은 ○○을 가야로 해석한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