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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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천성 남충시에 있는 진수의 조각상
우)진수가 지은 『삼국지』
1) 강역
먼저 서부여의 강역에 대해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
음과 같다.
“부여는 만리장성의 북쪽에 있으니 현도군에서 천리나 떨어져 있다”
이유립은 현도군을 요하의 서쪽에 있다고 하였다. 남쪽으로는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
고 동쪽은 읍루(挹婁), 서쪽은 선비(鮮卑)와 접하고 북쪽에는 약수(弱水)가 있다고 했는데,
정인보는 『조선사연구』에서 약수는 흑룡강성 치치하얼시 동북쪽 산속에 있는 홍안합탕
(紅眼哈湯)이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보면 부여의 영토는 하북성 동쪽, 요령성 서쪽에서 북
으로 내몽골 자치구와 흑룡강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2) 역사 기록과 역대 임금
서부여의 초대 임금은 CE 22년 고구려에 항복한 대소의 종제인데, 그의 등에 낙문(絡
文)이 있어 낙씨성을 하사하여 후에 그를 낙왕(絡王)이라고 부른다. 그는 고구려의 통제를
벗어나 자립하여 서쪽으로 진출하였다. 부여에 대한 역사기록을 연대별로 살펴보면 다
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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