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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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북부여는 고두막한의 아들 고무서단군을 거쳐 고무서 단군의 사위인 고주몽이

               계승하면서 고구려로 이어진다.


                 다섯 번째 부여는 ‘동부여’이다. 당시 북부여의 수도는 장춘(長春)이므로 흑룡강성 통하
               현(通河縣)으로 이주해 자리 잡은 동부여는 북부여의 동북쪽에 위치하므로 국호를 동부여
               라 한 것이다. 『삼국유사』에 동부여를 국호라고 기술하고 있고, 그 땅을 가섭원(迦葉原)이

               라고 했기 때문에 ‘가섭원부여’라고도 부른다. 고우루(해우루)의 동생 해부루(BCE 87~48)가
               세운 동부여는 이후 2세 금와(金蛙, BCE 48~7), 3세 대소(帶素, BCE 7 ~ CE 22)대에서 막을 내

               리게 된다.


























                        『삼국유사』의 <동부여조>,          동부여의 수도는 흑룡강성 하얼빈 동쪽에 있는 통하(通河)현이다.
                        동부여를 국호라고 하였다




                 여섯 번째 부여는 ‘갈사(曷思)부여’이다. CE 22년 2월 고구려의 3대 대무신열제(왕의 칭호

               는 『환단고기』「고구려국본기」에 근거)는 동부여를 침략하였다. 이때 대소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
               리고 대적하다가 고구려 상장 괴유(怪由)에게 패하여 죽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동

               부여가 강력하게 저항하자 고구려 열제도 샛길을 통해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2개월이
               지난 4월에 대소의 동생이며 금와왕의 막내아들이 수백 명을 거느리고 압록곡(鴨綠谷, 흑
               룡강과 송화강의 합류처인 동강시(同江市)로 추정)에서 그곳의 임금인 해두왕(海頭王)을 죽이고 갈

               사수(우수리강) 강변에 가서 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갈사 부여이다. 갈사 부여는 3대 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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