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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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옥저로 달아나 보전하였다. 이곳의 옥저는 서옥저로 만리장성 부근이다. 진
무제가 조칙을 내려 말하기를 “부여왕은 대대로 충효(忠孝)를 다했으나 나쁜 오랑
케에 의해 멸망당하였으니 몹시 불쌍하게 생각한다. 만약 살아남은 무리가 있어
나라를 회복할 수 있다면 마땅히 방책을 세워 그들을 존립(存立)하게 하라”라고 하
였다. 관리가 동이(東夷)를 보호하는 교위(校尉) 선우영(鮮于嬰)이 부여를 구원하지 못
하고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상주하였다. 이에 조칙을 내려 선우영을 면직시
키고 하감(何龕)으로 대체하였다. (『진서』 부여전)
CE 286년 부여의 후왕(後王) 의라(依羅)가 하감에게 사신을 보내 현재 있는 사람들
을 거느리고 돌아가서 나라를 회복하기를 구하고 인하여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하감 주위의 고관들이 독우 가침(賈沈)을 파견하여 군사로써 호송하였다. 모용외가
또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침과 싸웠으나 대패하였다. 모용외의 무리가 물러
가자 의라가 나라를 회복하였다. (『진서』 부여전)
이 뒤 모용외가 또다시 침략하여 부여 사람들을 약탈하였다. 의라가 무리 수천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마침내 왜인을 평정하고 왕이 되었다. (『대진국본기』)
『대진국본기』에서는 의려왕이 따르는 무리 수천 명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왜인(倭人)
을 평정하고 왕이 되었다고 했고 스스로 삼신(三神)의 부명(符命)에 응한 것이라고 하여 일
본의 15대 응신천왕(應神天王)이 되었다고 하여 의려도왜설(依慮渡倭說)과 의라도왜설(依羅渡
상)의라왕 도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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