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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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7·8
倭說)의 2가지 설이 존재하나 필자는 『진서(晉書)』와 『통전』에서 의려왕이 분명히 자살을
했다고 기록하였고 현재 일본의 오사카에 대의라신사(大依羅神社)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의라왕이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CE 347년 영화(永和) 3년 모용황은 연왕세자 모용준과 모용각을 파견하여 17000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부여를 기습하여 승리한 후, 부여의 왕 및 백성 5
만여 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진서』 권 109)
어려움 속에서도 서부여는 나라가 망하지 않고 유지되다가 494년에 종말을 고하게
된다. 『동사년표(東史年表)』에서는 마지막 왕을 잔왕(孱王)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서부여 왕의 세계(世系)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국지』와
『통전』에 위구태를 이어 위거가 임금이 되었다고 하여 『후한서』에 있는 부태왕은 일단 생략하였다.)
초대 시(始) 위구태 위거 마여
낙왕
마지막
의려 의라
잔왕
3) 사회와 문화
『삼국지』의 내용을 근거로 서부여에 관련한 몇 가지를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6종류
의 가축(牛, 馬, 羊, 鷄, 猪, 狗)으로 벼슬을 이름하여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배달국 시대의 오가(五加) 직제를 계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가(加)들은 별도로 사출도(四出道)를 주관하는데, 큰 곳은 수천가(家)이고 작은 곳
은 수백가(家)”라고 하였다. 사출도라는 말은 수도에서 사방으로 나가는 네 갈래 길을 의
미하는데, 서부여가 전국을 수도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지방을 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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