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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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명칭             시기                           내용

                                                        초대 단군이 넷째 아들 부여를 부여후로
                  1      원시부여          초대 단군 이후
                                                        봉해준 땅에서 기원. 농안 장춘 지역.

                                                        단군조선의 제3왕조 시대, 장당경
                                   44세 단군 ~ 47세 단군,
                  2       대부여                           아사달(요령성 개원)에 도읍한 이후 고조선이
                                   BCE 425~238 (188년)
                                                        끝날 때까지.
                                                        해모수가 건국한 BCE 239년부터 해모수의
                                   해모수가 건국한 해부터
                                                        혈통이 계승한 BCE 86년까지 154년간을
                                       고주몽이 7세
                  3       북부여                           전기북부여라 하고 고두막한이 계승한
                                      단군이 된 해까지.
                                                        BCE 86년 이후 고주몽이 등극하는 BCE
                                    BCE 239~58 (182년)
                                                        58년까지 29년간을 후기북부여라 한다
                                                        동명왕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킨 후
                                     고두막한이 의병을
                                                        졸본에서 즉위하여 졸본부여라고도 하고
                         졸본부여        일으켜 즉위한 BCE
                  4                                     자호(自號)를 동명이라 하여 동명부여라고도
                         동명부여        108년에서 북부여를
                                                        부른다. 후기북부여 시대(BCE 86~58)
                                   계승한 86년까지 (23년)
                                                        까지도 이 명칭이 쓰였다고 본다.
                                                        고두막한의 세력에 밀려 해부루가 제후로
                                                        강등되어 가섭원(지금의 흑룡강성
                          동부여        BCE 86~CE 22년
                  5                                     통하현)으로 이주한 기원전 86년부터 3세
                        가섭원부여            (108년)
                                                        대소왕이 고구려 대무신열제에게 죽은
                                                        해(CE 22년)까지.

                                                        대소의 막내 동생이 CE 22년 4월
                         갈사부여           CE 22~68        압록곡에서 해두왕을 죽이고 갈사수
                  6
                         (북갈사)           (47년)          (우수리강) 강변에 세운 나라.
                                                        CE 68년 고구려 태조무열제에게 항복.

                                                        북갈사의 3세 도두왕이 항복하자 고구려에서
                         동부여후                           도두왕에게 우태라는 직책을 내리고 혼춘을
                  7                     CE 68~?
                         (남갈사)                          식읍으로 주고
                                                        동부여후에 봉해줌.

                                                        CE 22년 7월 대소의 종제가 고구려에
                        연나부부여                           항복하자 연나부(요령성 개원 서북)에 살게
                                       CE 22~494년
                  8      낙씨부여                           하고 왕으로 봉해줌. 그 뒤 백랑산으로
                                         (473년)
                          서부여                           이주하여 중국과 고구려 사이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494년 고구려에 항복.

                                                        백제 성왕이 538년 공주에서 부여로
                  9       남부여          CE 538~554       천도하면서 일시적으로 이 명칭을 씀.
                                                        그의 사후 명칭이 없어졌다고 사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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