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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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매헌 윤봉길과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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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독립운동과 한국의 광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
                   국의 장제스는 윤봉길 의사의 쾌거에 대한 보답으로 카이로 회담에서 연합국 수뇌들을 설득하여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는 동의를 얻어냈다. 이런 윤봉길의 사상은 어디에서 유래하였을까? 이번
                   칼럼을 통해서 윤봉길의 사상에 더 깊이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 목계(沐溪)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뜨거운 이름이다. 집에서 부르는 나이, 스물세 살에 집을 떠
                나 스물다섯 살에 일본에서 형장의 이슬로 운명한 이름이다. 이 뜨거운 이름의 근저에
                는 놀랍게도 뜨거움의 반어인 ‘물’이 있다. 목바리다. 매헌은 목바리 태생이다. 시량리

                동네의 별칭이다. 목바리는 현재 윤의사 사당 서쪽에 ‘목바리’라는 석비(石碑)가 세워져
                있다. 정확한 명칭은 ‘목발(沐髮)이’다. 수덕사가 자리한 유서 깊은 고찰을 품고 있는 덕

                숭산(德崇山)과 서해안의 명산으로 가야구곡을 품고 있는 가야산(伽倻山) 계곡 사이 흐르
                는 대치천에서 유래된 말이다. 대치천에는 명경지수가 흘렀다. 천년 사찰인 덕숭산의

                염불과 만년 고산인 가야산 염력이 산맥을 휘감아 흘렀다. 이중환의 『택리지』 기술대
                로 조선에서 사람이 살기 좋은 명당지지이다. 그 중앙을 흐르는 대치천은 예사로운 천

                이 아니다. 산천초목을 푸르게 가꾸며 아이들이 멱 감고 그 정수리에 꿈을 심어주는,
                신령한 냇물을 냈다.
                  덕숭산, 가야산, 수암산, 용봉산의 마을, 시량리는 덕산온천이 자리한 지리적 중앙

                지지이기도 하다. 이 마을 여인들은 마을을 관통하는 대치천에서 긴 머리를 풀어 머릴
                감았다. 맑고 시원한 산들바람의 고향, 시량리에 사는 여인들의 머릿결이 목계로 인하

                여 윤기를 더하였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선친, 남원군을 모신 덕산면 상가리 소재 위
                산소 부근에서 발원하는 옥계(玉溪)와 더불어 덕산천(德山川)을 이루는 시량리가 목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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