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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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7·8


                                                        Ⅳ. 나가면서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1920년대 활동은 종교적 민족운동의 시각으로 평가받기

                          에 충분하다. 종교적 민족운동이란 종교인들이 대거 참여한 민족운동이라기보
                          다는 해당 종교 교리에 의한 종교적 비전을 바탕으로 한 논리가 민족운동의 동

                          력이 되면서 해당 종교조직을 활용하고 있거나 아니면 교인공동체로 형성된 인
                          적 네트워크를 기초로 민족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민족종교 세력은 식민지라

                          는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회유정책에 맞서는 동시에 다양한 차원에
                          서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보천교인들의 다수 항일활동은 직접적으로 교리

                          에 근거한 민족운동 자료를 찾기는 어렵지만, 교인들이 포교로 만들어진 인적 네
                          트워크를 통해 항일활동 참여가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다.
                            국내에서 교인들에 의해 행해진 군자금 모집 등의 각종 항일활동들과 1920년

                          대 전반기 상해와 만주 등 해외에 근거를 둔 여러 독립단체들과의 연결은 포교의
                          인적 네트워크로 이루어졌다. 심지어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의 추진조직

                          에 다수의 보천교 신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보천교 본소가 자리한 정읍 대흥
                          리에는 정(井)자 깃발을 내걸고 평등을 지향하는 정전제(井田制)를 주창하며 백의의

                          민족적 자존심과 토산장려와 자작자급을 실천하는 상생의 공동체를 건설하려
                          했다. 보천교가 의도했던 것은 해원상생의 종교 공동체 건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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