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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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내용이 적힌 ‘조선독립 고유문(告諭文)’이 경주 등지의 부호
들과 경북, 강원지역에 배포되었고, 이에 따른 군자금 모집활동이 경북과 강원지
역을 넘어 전국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조선 전국 경찰
서에 검거할 것을 전달했다. 1921년에 경북·강원지역을 중심으로 태을교도 대검
거가 시작되고 이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이 사건으로 경북 안동지역에서는
3백 명 이상이 기소되면서 언론에서도 ‘근래에 큰 사건’으로 기사화되었다.
1921년 말에는 태을교의 ‘10만 원 은닉사건’이 발각되었다. 당시 신문에 기사
화된 내용은 이렇다. ‘100만 명의 신도를 확보한 태을교에서 두렵고 큰 음모를
꾸미는 것을 확인하고 즉시 간부 김홍규 등을 체포하고 가택 수색하여 다수의
불온문서와 지화와 은화를 포함한 모두 10만 7,750원이 들어있는 항아리 한 개
를 압수했다.’ 김홍규는 탄허스님의 부친으로, 보천교의 교금을 관리하는 지위
높은 간부이며 교주 차월곡을 보좌하는 목(木)방주였다. 그리고 김홍규 집에서
찾아낸 10여만 원은 ‘독립 정부가 설립될 때 사용할’(<신한민보>) 자금이었다. 이것
이 기사에 나타난 ‘두려운 큰 음모’이자 ‘불온문서’의 내용이었다.
<동아일보>의 1922년 12월 23일자. 한 면이 모두 태을교 항일활동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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