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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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논란 중인 한사군, 임나



                  한국사에서 학자들 간에 현재까지도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는 주된 내용은 평
                양 중심의 위만조선·한사군의 위치 비정과 한반도 남부 『일본서기』임나의 위치

                비정이다. 이유는 이 부분이 조선총독부가 조선사를 집필하면서 만선사관(滿鮮
                史觀)·반도사관·식민사관의 시각 속에서 비정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한
                국사학계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하고 있지

                만, 상기 두 가지 틀은 바뀌지 않고 최근 들어서 더욱 공고히 강화되고 있는 상
                황이다.

                  부산시가 시사 출간에 있어 이 두 가지 역사 논점에 대해서 신중을 기해야 하
                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평양 중심의 위만조선·한사군 설정은 현재 동북공정의

                핵심 논리로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식 언급한 “한국은 중국의 속국
                (a part of china)”이란 말을 부응해주기 때문이다. 둘째는 「광개토태왕비문」과 『일
                본서기』를 인용하여 가야와 부산지역을 『일본서기』의 임나지역으로 확정했기 때

                문으로 조선총독부가 가야를 임나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지명 비정을 시
                작한 것이 『부산시사』로 마무리가 된 느낌이다.

                  한·중·일의 고대 역사논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사시사』에
                자기 학맥의 주장이나 사견이 마치 역사적 사실로 기술된다면,  부산에서 동북공

                정을 인정하고 조선총독부를 다시 소환하여 그들의 주장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
                이 된다.

                  이에 『부산시사』 원고 중 상기 문제에 관련된 대단히 우려되는 부분을 지적하
                고, 그에 대한 주변국의 한국사 기술을 비교하여 수정 필요성을 전하고자 한다.
                이 부분은 절대 학술논쟁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해당 부분 편찬자와 시민들 간

                의 학술논쟁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기에 부산시에서 해당 상황을 확인하여
                조치하는 것이 문제해결에 첩경임을 건의하고자 한다.



                2. 조선총독부의 고령가야 임나설을 수용한 『부산시사 』

                  에도시대부터 불기 시작한 일본 국학의 붐은 명치 시기 대륙진출을 위한 정한

                론으로 거세게 불이 붙었다. 명치 시기 학자와 군부가 힘을 모아 『일본서기』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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