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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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6
에 살다가 나중에 처가가 있는 김해로 거 서 따온 것으로 ‘산(☶)
처를 옮겼다. 후에 산청으로 옮겨 산천재 밑에 하늘(☰)이 있는 괘
(山天齋)를 지어 후학들을 가르치며 단 한 상’이다. 대축괘는 “군
번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고, 산 속에 자는 강건하고 독실하
묻혀 산림처사(山林處士)로 일생을 마쳤다. 게 안으로 덕을 쌓아, 밖
으로 빛을 드러내서 날 산천대축괘(山天大畜卦)
산천재 로 새로워진다.”는 의미이다.
지리산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 즉 산천재는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산
산천재를 짓고, 그 서재의 왼쪽 창문에는 속에 묻혀 심성을 도야하고 학문을 크게
경(敬)자를, 오른쪽 창문에는 의(義)자를 쌓아 쓰일 때를 기다린다는 선생의 깊은
써 붙여놓고 평생토록 지켰다. 뜻이 담긴 당호(堂號)이다.
산천재는 학문을 닦고 후학들을 가르 이 같은 남명의 정신이 담긴 것이 산천
치던 곳으로 ‘산천(山天)’이란 이름은 <주 재 앞뜰에 심어진 유명한 ‘남명매(南冥梅)’
역> 26번째 ‘산천대축괘(山天大畜卦, ䷙)’에 이다. 선생이 산천재 뜰에다 손수 심고
남명매(南冥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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