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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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6
그러나 노고달령부터는 산악 지형으로 인해 기마병의 지속적인 진군이 어려웠
을 것이다.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고려의 현종(왕순)이 조근(朝覲)을 하겠다는 표
문을 올리자, 거란군이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거란군은 무자 일에 노고달령까지 진격했으나, 그 이후로는 추가 진격을 하지
않고, 신묘 일까지 거란군과 고려군이 대치 상태에 있었다. 이후 신묘 일에 고려
현종의 표문을 받고 거란군이 철수한 것이다.
『요사』의 사료에는 이러한 정확한 전쟁 상황과 경로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강동 6주의 기준이 되는 압록강이 한반도 압록강인지 요하(鴨淥江)인지를 확
인할 수 있다. 결론으로 『고려사』, 『고려사절요』, 『요사』에서 언급된 거란이 건너
간 압록강(鴨淥江)이 요하이며 강동 6주는 요하 근처 지역이라는 강동 6주 만주설
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지금까지 강동 6주가 한반도 압록강(鴨綠江)지역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요하[압
록강:鴨淥江] 근처의 지역인가라는 경합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논점에서 살펴보
았다.
첫째, 거란이 막대한 군사적인 비용과 사상자를 무릅쓰고 6차까지 고려를 침
공한 배경은 강동 6주의 경제적인 가치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제적인 가
치가 월등히 높은 지역은 요하를 포함한 요동 반도이며 그러한 요충지로 강동 6
주가 중요하다.
둘째, 거란이 고려를 침공한 전투 경로에 대한 사서의 설명은 현재 한반도 압
록강 아래에 있는 강동 6주의 지명으로는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다. 그러한 전
투 경로의 모순은 강동 6주의 지명을 한반도 내로 국한 시키려는 일제의 반도 사
관에 의한 역사적인 왜곡이다.
이러한 왜곡된 역사관에 자행된 교과서를 올바르게 정립하고 국민들에게 정통
사학을 알리는 역할은 우리 대한사랑의 역사적 사명이라 할 수 있겠다. 앞으로
도 교과서에 박혀있는 역사왜곡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대한사랑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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