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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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란의 2차 침공 시 전투 경로
1010년 12월, 거란의 성종이 고려의 강조가 목종을 시해한 것을 구실로 삼아
보병과 기병 40만 명을 이끌고 고려에 대한 2차 침공을 감행했다. 아래의 도표
는 2차 침공에 대응한 고려 군사의 상황을 설명하는 자료이다.
<도표2> 거란의 2차 침공 시에 대처한 고려 군사의 전투 경로
출 처, 시기 번 역 문 원 문
겨울 10월 병오 초하루
참지정사(叅知政事) 강조(康兆)를
『高麗史』世家 冬十月 丙午朔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로, 以叅知政事康兆
卷 第4,
(중략) 형부상서(刑部尙書) 爲行營都統使, (중략)
顯宗 元年
최사위(崔士威)를 통군사(統軍使)로 刑部尙書崔士威爲統軍使,
임명하여, 병사 30만 명을 率兵三十萬, 軍于通州,
以備契丹.
통솔하여 통주(通州)에 진을 치고
거란(契丹)에 대비하였다.
최사위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崔士威, (중략) 爲統軍使,
『高麗史』卷九十四 列 군사를 나누어 귀주(龜州) 북쪽의 육 與康兆等, 禦契丹.
士威率諸將,
傳 卷第七 諸臣 崔士 돈도(恧頓道)·탕정도(湯井道)·서성도
分軍出龜州北恧頓·湯井·曙
威 (曙星道) 세 방면으로 진군하였는데,
星三道,
거란과 싸우다가 패배하였다. 與契丹戰敗績.
<도표2>에 따르면, 강조(康兆)는 30만 고려군을 이끌고 해안 통로인 통주(通州,
선천군)에 주둔했다. 거란의 성종은 40만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흥화진을
점령했으며, 그중 20만은 통주로 진출시켰다.
성종은 나머지 20만 군을 지휘하여 동산(銅山: 철산) 아래 주둔했고, 이에 대응하
여 강조는 동주[통주]를 지키며 물러나 싸웠다. 하지만, 전쟁 경로에 대한 분석에
서 모순이 발견된다.
해안 통로인 통주에서 거란군과 싸우던 최사위(崔士威)가 군사를 동원해 내륙
통로인 귀주(龜州) 북쪽의 육돈도(恧頓道), 탕정도(湯井道), 서성도(曙星道) 세 방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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