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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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을 패배시켰다. 이는 전투의 경로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료로, 거란군의 신속한

                          진격과 전략적 지역 점령을 나타낸다.
                            거란군이 무자 일에 노고달령을 점령한 후, 3일 뒤인 신묘(辛卯) 일에 고려 현종

                          (왕순)은 사신을 보내 조근(朝覲)을 요청하는 표문을 올렸다. 이는 거란의 빠른 진
                          격에 대한 고려의 즉각적인 대응을 보여주며, 당시 긴박했던 정세를 반영한다.

                          그런데 현재 한반도 압록강 이남 지역인 강동 6주의 지명으로 위 전투 경로를 그
                          려보면 상당한 모순이 발생한다.






























                                                          그림 5> 현 학계의 강동 6주설로 볼 때 곽주, 영주를 점령한 후
                                                                다시 후퇴하여 노고달령으로 진격했다는 전투 경로




                            이 사례에서 거란군의 전쟁 경로는 확실히 논리적으로 모순된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노고달령부터 압록강을 건너 역사학계에서 주장하는 강동 6주의 동주,
                          곽주, 귀주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험준한 북한의 산맥을 지나야 한다. 거란의 기
                          병이 전투 상 불리한 지형이어서 현실적으로 3일 만에 점령할 수 있는 거리가 아

                          니다. 또한 중간에 매복한 고려군에 의해서 거란 기마병이 불리한 전투가 벌어질
                          수 있는 환경이다.

                            둘째, 거란군이 가장 빠른 거리로 평양을 향해서 직진해야 하는데, 오히려 건
                          너온 압록강을 다시 건너가 노고달령으로 간다는 황당무계한 작전을 펼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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