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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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6


                         었는데, 아직도 있다는 말인가? 내가 비록 불민(不敏)하지만 두루 제왕의 행적을 보

                         았더니 참위(讖緯)의 설(說)을 논자(論者)들은 모두 취하지 아니하였다.”
                           서운관(書雲觀)은 고려시대 때 천문, 지리, 책력, 측후(測候) 등의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으로 『서운관비기(書雲觀祕記)』, 「구변진단도(九變震檀圖)」 등의 비결서와 참위서
                         도 많이 보관되었다고 전해지니 「신지비사」도 당연히 이곳에 보관되었을 것이다.

                           일본의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조선고사연구』에서 “고려 시대에 『고
                         조선기』와 유사한 구전(口傳)과 고기(古記)가 많았다. 그 당시 서운관에 『고조선비
                         사』, 『대변설』, 『조대기』, 『표훈삼성밀기』, 『삼성기』 등이 있었다” 라고 밝힌 바 있

                         다. (문정창, 『단군조선사기연구』)
                           위의 내용을 보면 태종은 충주사고에 보관된 「신지비사」를 불태웠을 뿐만 아니

                         라 서운관에 보관되어 오던 『고조선비사』를 비롯한 삼성조시대의 고대 역사서까
                         지 불태운 사대주의 군주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4. 「신지비사」의 저작 경위


                           6세 단군 달문 35년(BCE 2049년)에 여러 왕들을 상춘(常春)에 모아 구월산에서 삼
                         신께 제사지낼 때 신지 발리(發理)로 하여금 「서효

                         사」를 짓게 하였다. 달문 단군은 우가(牛加) 출신으
                         로 5세 구을 단군의 뒤를 이었다.

                           장춘(長春)은 우리말로는 ‘늘봄’ 이다. 『태백일
                         사』「고구려국본기」를 보면 “평락(平樂) 12년 을미
                         년(BCE 26년) 고주몽 성제께서 졸본(卒本)에서 도읍

                         을 눌견(訥見)으로 옮겼는데, 눌견은 지금의 상춘
                         주가성자(朱家城子)이다”라고 하였다. 지도를 보면

                         장춘의 동북쪽에 주성자진(朱城子鎭)이 있는데 이곳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구월산이 있

                         고 또 삼성묘(三聖廟)가 있었다. 대진국이 망하면서
                         상춘에서 고려로 이주해 온 유민들이 만주에서와

                         같이 황해도 문화현 구월산에 삼성사(三聖祠)를 지
                         어 국조 삼신께 제사를 지냈다.                                           6세 달문 단군 상상도(김산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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