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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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통맥 바로잡기 2)
「신지비사(神誌秘詞)」를 통해 본
단군조선의 통치정신
1. 「신지비사」에 대한 단재 신채호의 감상(感想)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신지비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
다.
조선의 역사에 관한 서류(문헌)를 치자면 신지(神誌)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신
지는 권람(權擥)의 『응제시(應製詩)』에서 단군 때의 사관(史官)이라 하였다. 그러
나 내가 살펴보면 단군은 소도(수두)제천하던 임금이고, 신지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소도제천하던 임금의 수석 보좌관의 관명인 ‘신치’니 역대 신지들이
매년 10월 ‘수두’ 대제(大祭)에 우주의 창조와 조선의 전설과 산천지리의 명승
과 후인들이 거울삼아 경계할 일을 들어 노래하더니 후세의 문사들이 그 노
래를 혹 이두문으로 이를 편집하여 혹 한자의 오언시(五言詩)로 이를 번역하고
베껴서 왕궁에 비장(秘藏)하였으므로 「신지비사」, 『해동비록』 등의 명칭이 있
었다. 그 적은 내용이 사실(事實)보다 잠언(箴言)이 많아서 옛사람들이 예언의
한 종류로 보았으니 이조 태종이 유학을 중
심하고, 그 밖의 일체를 배척하여 이단시 되
는 문자를 모두 불살라 버릴 때, 「신지비사」
도 그때의 액운을 면치 못하여 겨우 『고려사』
「김위제전(金謂磾傳)」에 적힌 ‘여칭추극기(如秤錘
極器) 칭간부소량(秤幹扶疎樑) 추자오덕지(錘者五
德地) 극기백아강(極器百牙岡) 조항칠십국(朝降七十
國) 뇌덕호신정(賴德護神精) 수미균평위(首尾均平
位) 흥방보태평(興邦保太平) 약폐삼유지(若廢三諭
地) 왕업유쇠경(王業有衰傾)’이라 한 10구만 전하
신채호(1880~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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