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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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을 두루 갖춘 지역이어서 반드시 여기에 이궁(離宮)을 건립하여 머물러야만 나라

                가 크게 흥성한다고 역설하였다.
                  고려 예종 1년 (1106년) 예종은 김인존(金仁存) 등의 유신(儒臣)과 태사관(太史官)들에

                게 명을 내려 『음양지리제가서(陰陽地理諸家書)』 즉 도참서를 산정(刪定: 글을 다듬다)하
                여 『해동비록(海東祕錄)』을 편찬케 하였는데, 이 속에 『신지비사』가 당연히 포함되

                었으리라 추측된다.
                  『세조실록』을 보면 세조3년(1457년) 팔도관찰사에게 명을 내려서 일반 백성들이
                가져서는 안되는 책들을 거두어서 올리게 하는데, 첫 번째 언급한 책이 『고조선비

                사(古朝鮮秘飼)』로 바로 『신지비사』이다.

                  김위제의 삼경설 내용이 『성호사설(星湖僿說)』의 「천지문(天地門)」 『고려비기(高麗祕
                記)』에서도 다시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 이익(李瀷)은 “『신지비사』라는 것은 어느 사
                람이 지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역시 우리 성조(聖朝)의 문명지치(文明之治)를 예견했

                으니 특이하다 하겠다” 라고 하였다.


                3. 『신지비사』의 소실(燒失)

                  『조선왕조실록』 태종 12년 8월 7일의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사관 김상직(金尙直)에게 명하여 충주 사고(史庫)의 서적을 가져다 바치게 하
                    였는데, 『소아소씨병원후론』……『책부원구』등의 책이었다. 또 명하였다.

                    “『신비집(神祕集)』은 펴보지 못하게 하고 따로 봉하여 올려라” 임금이 그 책
                    을 보고 말하기를 “이 책에 실린 것은 모두 괴탄(怪誕)하고 불경(不經)한 설(說)

                    들이다” 하고 대언(代言) 유사
                    눌(柳思訥)에게 명하여 이를 불
                    사르게 하고 그 나머지는 춘

                    추관에 내려 간직하게 하였다.


                  또 『조선왕조실록』 태종 17년
                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내가 서운관 구장(舊藏)의 참서(讖
                書)를 모조리 불살라 버리라고 했                조선 서운관 (이미지 = 영화 <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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