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월간 대한사랑 24년 1월호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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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
었다. 경주에는 신라 뿐 아니라 이 동학이 그 상제님과 문답을 하고 천명을 받고 시천
있다. 주 주문을 내려 받은 최제우 대신사는 이를
1824년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경상도 경 통해 동학을 창도하게 된다. 그가 쓴 한글로
주에서 출생을 하였다. 그리고 17세가 되 된 동학경전의 명칭이 『용담유사』일 정도로
던 해에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20세부 경주 용담은 수운 최제우에게 큰 영향을 준
터 행상을 하면서 민초들의 삶을 체득하게 곳이었다. 조상 때부터 지켜 내려왔고, 또 최
된다. 1855년 울산에서의 ‘을묘천서’ 사건 제우 자신이 태어나서 자랐으며 득도하였던
을 계기로 더욱 수행에 정진을 거듭하였고, 곳이 바로 이 경주 구미산 용담이었다.
1859년에는 경주 용담정으로 들어와 기도 용담정에 오른 해외동포 언론인 일행은
에 정진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1860년 음 10분 이상을 걸어서 올라왔지만, 지친 기색
력 4월 5일 동학 창도의 계기가 되는 신비한 이 없어 보였다. 고대의 신라보다는 훨씬 가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하늘의 주인 천주님 까운 160여 년 전의 유적이고, 지금의 우리
이신 상제님을 만나게 되는 일명 ‘천상문답 에게 큰 영향을 준 동학이 주는 에너지가 활
사건’을 접하게 된 것이다. “내가 상제다 너 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는 상제를 모르느냐”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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