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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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 신관의 동양철학적 해석 사이먼 킴
개화기에 상당한 수준의 서양학문을 접한 19세기 철학자 혜강 최한기 (1803-1879)는 기독교
와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신의 관념을 다음과 같이 가차없이 비판한다. 기독교의 경우 “신과 하늘을
경건하게 섬겨 죄를 면하고 복을 구하며 천당에 오르고 지옥을 피하려는 계책으로 삼는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혹평한다. 29) 기독교의 신이나 천당은 애당초 육합지외(六合之外)에 있는 것
이므로 설사 있다하여도 논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30)
육합이란 천지 상하 동서남북 사방을 일컫는 말로서 우주자연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다. 우주 자
연 바깥에서 창조주 신이 있어 조물주 역할을 한다는 발상, 즉 초시간적, 초자연적, 초월적 신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화세계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연을 초월하거나, 시공간 너
머에 있는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방무형하여 만세토록 궁구하더라도 증험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있더라도 논할 것이 못된다.(無方無形 窮萬世而不可得驗者 存而勿論)”고 말하는 것이
다. 31)
자연 현상을 오로지 운화기로서 해석하는 혜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슬람교의 경우는 물론 불
가와 선술까지도 싸잡아서 비판한다. “매일 다섯 차례 예배의식을 자주 거행하는 천방교는 무수한
예배로 사후 영혼의 안락을 도모하니, 이는 불가에서 차원 낮은 보응의 설로서 권유하여 불교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으며, 선술에서 기를 단련하여 육체를 벗어나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
는 것과 같으니 이는 천하고 비루한 행위이다.” 32)
이 뿐만 아니라 혜강은 일반인들이 신에 대해 갖는 신비감 즉 신통, 신기, 신이, 신묘하다는 신의
속성은 어리석음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우매한 세속 사람들이 귀신의 신의 의미에 물들어 집착함
이 많아서 무릇 여러가지 신 자 중에서 그것을 분석할 수 없었으므로, 문득 한결같이 혼잡스럽고
끝없이 기괴한 학설이 이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다.” 33)
“대저 신통, 신기한 신이라는 것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고, 알 수 없는 것을 말한다. (蓋神
通神奇之神, 指其不可測. 不可知而言也). 신통 신기 신이 신묘란 형용어는 경험하지 못하고 알
지 못하여 붙인 이름이니 경험하고 알고 나면 그 호칭이 없어질 것이다.” 34)
기 경험주의라고 할 수 있는 최한기의 신관을 통하여 동양철학의 보편 세계관인 기철학에서 보
28) 화이트헤드 저, 오영환 역, 『과학과 근대세계』 (서울: 일신사, 1974) 6장 19세기 참조. A.N.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rn World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25) p. 151. A non-materialistic philosophy
of nature.
29) 혜강 최한기의 원전 번역서와 연구서는 상당히 많이 나와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주제를 일관시키기 위해 혜강의
주저인 <기학 氣學>을 중심으로 인용한다. 최한기 지음, 손병욱 옮김, 『기학』 (서울: 여강출판사, 1992) 54쪽
30) ibid
31) 전게서, 74쪽
32) 전게서, 54-55쪽
33) 전게서, 240쪽
34) 전게서,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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