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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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 신관의 동양철학적 해석 사이먼 킴
개념을 쉽게 파악한다. 이에 반해 신의 개념은 파악하기도, 기술하기도, 이해하기도, 어쩌면 경험
하기조차도 어렵다. 신은 인간의 사고에 의하여 상징화된 존재로 설정되기는 하였지만, 만물처럼
자연현상으로서 이름 붙여진 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한(東漢)시대(189-220)의 허신(許愼)은 <설문해자>에서 1을 이렇게 해석한다. “도는 하나에
서 세워져 하늘과 땅으로 나누어졌고 다시 만물로 변했다. (惟初太始,道立於一,造分天地,化成萬
物.)” 19) 자연수가 1로 시작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태초이든 태시이든 우주 시원은 1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만약 음양처럼 이분화된 존재를 설정하면 다시 그 시원인 1을 캐묻
게 될 것이다. 조선시대 석학 율곡 이이(1536-1584)는 유불선 삼교의 학문에 호기심을 가져 ‘만법
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를 화두로 삼아 금강산에서 수년 간 수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20)
동양학에 있어서 인간이 이해하는 세계는 하늘과 땅, 음과 양의 이원적 구조로 시작된다. 하나인
채로 있어서는 개별 존재인 만물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2로써 하늘과 땅, 남과 여, 해와 달, 낮과
밤 등의 사물과 사태의 이분법적 분류로 앎이 시작되는 것이다. 3은 더 개별적이고 다양한 사물의
분화를 나타낸다. 1에서 2, 2에서 3으로 연장되는 이러한 수리논리는 천부경에서 간결하게 요약
된다. 노자 역시 도덕경에서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
라고 만물의 시원을 1로부터 추론해 나간다. 21)
동중서는 <춘추번로>에서 근원적 1을 이렇게 말한다. “오직 성인이라야 만물을 하나로 (一) 귀
속시켜서 그 근원 (元)에 연계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춘추에서는 일을 바꾸어 원이라고 하였다.
원은 본원 (原)과 같으니, 천지를 따라 처음과 끝을 (終始) 함께 한다는 뜻이다.” 22) 一과 元과 原,
시와 종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인간의 사유를 통해서만이 천지자연 우주만물을 근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설문해자에서 1이 太始의 의미로 시작하듯, 도덕경이나 춘추번로에서 1은 만물의 시원이
자 본원, 시종(始原, 本源, 始終)으로 해석된다.
“원이란 만물의 근본이니, 사람에게도 이러한 시종일관하는 원이 있기 마련이다. 어디에 있는
가! 천지가 시작되기 전에 있었다. (故元者爲萬物之本而人之元在焉. 安在乎! 乃在乎天地之前)” 23) 이
같이 유학자 동중서의 안목에는 천지를 창조한 신이 존재 한다거나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식의
이론이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본원적 1은 인간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동중서의 사유는 천부경
의 1 사상이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과도 통한다.
시원적 사유, 본원적 사유는 어느 문화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양과 서양이 마찬가지다. 20세기
철학자로서 본원적 사유에 충실했던 화이트헤드는 존재하는 만물의 보편자의 보편을 세 가지 궁
극적 사유형태로 규정하는데, 창조성, 일자, 다자가 바로 그것이다. 24) 신의 존재가 그러하듯 창조
19) 염정삼,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13) 설문해자 1 해석 참조
20) 한영우, 『율곡 평전』 (서울: 민음사, 2013)
21) 노자, 도덕경 42장
22) 소여 지음, 허호구 외 옮김, 『역주 춘추번로 의증』 (서울: 소명출판, 2016) 201쪽
23)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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