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9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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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의 천부경 연구 최무영
김지하에 의하면 ‘一始無始一’은 ‘한울의 시작은 시작이 없는 한울’이다. 김지하는 자신의 이 해석
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에 대한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야함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다시
말해 단순하게 ‘시간적인 처음’으로서의 한울, 구약과 같은 첫 우주를 창조한 자로서의 하느님 이
야기의 범주를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49) 김지하는 서유럽 중심의 이 선형적 시간관을 비판하기
위해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를 예로 든다.
4) 선형적 시간관 비판 - ‘비선형적 圓滿 50) 우주생성관’
시인 김지하가 천부경의 ‘一’ 뿐만 아니라 천부경 전체를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공을 들여 다룬 주제는 ‘시간’의 문제이다. 이는 ‘시간’개념에 관한 오래된 관습과 오도된 시간관에
따른 폐해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천부경이해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은 시간에 관한 기존의 관점, 즉 유럽문명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는 선형적 시간관과 우주관
에서 이탈해 새로운 창조적 시간관, 즉 ‘비선형 원만 우주생성관’으로 재정립할 것을 요청한다. 다
시 말해 “유럽 專有(전유)의 시간관, 태초관, 종말관이나 과거는 암흑이고 미래는 문명이다”와 같
은 ‘진보주의, 역사주의 등의 선형적(線形的, chronos) 시간관’ 대신 ‘대방광불화엄경의 세계관,
동학의 향아설위(向我設位)’ 51) 와 같은 ‘비선형적 원만 우주생성관’, 즉 ‘지금 여기’에서의 끊임없
는 확장 순환의 무궁무궁 우주관 52) 의 시각으로 변화해야만 ‘한’으로서의 ‘一’을 비롯한 천부경의
전체 맥락에 다가설 수 있음을 뜻한다.
김지하는 주로 서양문명의 시간관이라 할 수 있는 선형적 시간관을 비판하기 위해 천부경의 한
울과 처음(시작), 즉 ‘一’과 ‘始’를 하이데거의 대표적 저서인 『존재(Sein)와 시간(Zeit)』에서의 존
재(Sein)와 시간(Zeit)이 내포하고 있는 뜻과 비교한다. 53) 즉 ‘한울(一)’을 ‘존재’의 의미로, 그리
의 ‘呪文이기 때문에 呪文이 끄는 힘이 呪文의 연속성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그 연속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의미 맥락을 다시 끊어서 이해하고 또 다시금 그것을 총괄적으로 연속시켜 인식하는 삼단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
다. 그 이유는 천부경의 ‘한울(一)’이 ‘비선형적 무궁운동’이라는 점 때문이며, 이와 같은 기본적 관점이 전제되어야만
‘유치한 읽기 논쟁 따위가 지양(止揚)될 것’이라고 본다.(김지하(2014), 47쪽.)
49) 김지하(2014), 41쪽.
50) 김지하는 천부경을 해석하면서 그의 사상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동학의 주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원만(圓滿)’은
동학의 주경전인 『동경대전』 우음(偶吟)의 南辰圓滿北河回에서 나온 것으로 ‘시간은 직선적으로 흐른다’라는 선형적
시간관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원만하게 차오른다’는 뜻이다.
51) 동학의 ‘향벽설위(向壁設位)는 이제까지 선천시대, 즉 수만 년의 인류문명사 전체를 지배해 왔던 기본 문화양식’으
로, 위패를 모셔놓은 벽을 향해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의 희망이 미래에 이루어진다고 하는 화살방향의
역사관, 시간관’을 뜻한다. 향아설위는 벽을 향해서가 아니라 제사 지내는 자신을 향하여 절을 한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선형적 시간관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의 살아있는 생명주체가 중심이 되는 창조적 시간관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지하, 『김지하전집』 제 1권(철학사상) (서울: 실천문학사, 2002), 398-401쪽 .
52) 김지하(2014), 41쪽.
53) 김지하(2014),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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