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2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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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분과


                    궁극적 실재인 ‘하나(一)’는 그 자체는 생멸(生滅)하지 아니하면서 만유를 생멸케 하고 또한 그

                    자체는 무규정자(道常無名)이면서 만유를 규정하며 만유에 편재(偏在)해 있는 무시무종(無始
                    無終)의 유일신(唯一神)이므로 감각과 지각을 초월해 있으며 언어세계의 포착망에서 벗어나 있

                    다. 말하자면 ‘진리 불립문자(不立文字)’인 것이다.               64)



                   이는 김지하의 ‘一’과 비슷한 것 같지만 미묘한 측면에서 다르다. 즉 최민자의 해석에 나타나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하나(一)’, 혹은 이근철의 ‘우주 만물의 근원’, ‘근본원리’, ‘생명의 본체’ 등의

                 규정은 김지하의 글에는 보이지 않는다. ‘근원’, ‘본원’, ‘궁극’, 등과 같은 규정은 최민자, 이근철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해석 대부분의 글에서 보인다. 즉, ‘사물이 비롯되는 근본이나 원인(根源)’, ‘사

                 물의 주장(主張)이 되는 근원’(本源) 혹은 ‘어떤 과정의 마지막 혹은 끝’을 뜻하는 궁극(窮極) 등의
                 의미로 ‘一’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천부경의 ‘一’에 대한 직접적인 해석은 아니지만, 동학의 ‘한울’

                 을 ‘개별자이면서 보편적 성격을 지니는 주체’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65)
                   김지하는 이 ‘一’을 다르게 해석한다. 김지하가 보는 ‘一’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뿌리 혹은 내재

                 해 있는 어떤 원인 같은 개념이 아니며 더구나 ‘비선형적 원만 우주생성관’이라는 시간관에서 보듯
                 이 어떤 과정의 마지막 혹은 끝(궁극)이란 개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자(一者)’, ‘실재’, ‘원리’와 같은 기존해석의 개념정의도 유사한 맥락이다. 예를 들어 실재(實
                 在)의 사전적 정의는 ‘1. 실제로 존재함, 2.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에서)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

                 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세계. 3. (철학 관념론에서)사물의 본질적 존재’(네이버 국어사전)
                 인데, 이 실제에 관한 세 가지 뜻의 사전적 정의의 모두 김지하의 ‘一’의 의미와 배치된다. 오히려

                 김지하가 비판적으로 바라본 ‘어떤 과정의 마지막과 끝’(궁극)이라거나 시종(始終), 현상과 뿌리
                 (원인) 등의 관점이 이들의 개념정의에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김지하의 ‘한울(一)’의 의미

                 를 살펴보자.



                    한울의 (---) 자기에서 출발해 가없이 넓게 퍼져나가는 움직임은 거의 동시에 빈틈없이 자기 안
                    으로 새롭게 돌아오고 또 돌아와 자기 자신을 쇄신한다. 텅 비어 들리는 듯하나, 볼 수 없고 무슨

                    형상이 있는 듯하나, 그려낼 수 없는 대혼돈 그 자체인 장엄한 질서(渾元之一氣) 즉 ‘지극한 기
                    운(至氣)’ 그 자체다. 그러나 그것은 첫 시작이 있는 듯하나, 없고, 끝(終末)이 있는 듯, 하지만 전

                    혀 끝날 줄을 모른다. 한울은 한없이 많은 여러 현상들을 내포하므로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가
                    없고 닮을 수는 있지만 맞출 수는 없다. 그래서 한울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66)






                 64) 최민자(2015), 58쪽.
                 65) 유현상(2017), 201쪽.
                 66) 김지하(2014), 4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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