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3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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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의 천부경 연구 최무영
然)’라고 할 수 있다. 김지하는 일종의 ‘창조적 진화론’이라할 만한 이 인식방법론을 전개하면서
지금까지 서양 인식론의 근간을 형성했던 헤겔, 마르크스 등의 변증법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을 시
도한다. 그에 의하면 ‘변증법적 사고는 드러난 질서, 가시적 세계의 이러저러한 모순 충돌과 그것
들의 종합의 끊임없는 확장, 전개, 역전, 지양의 관계를 체계화한 사고’다. 22) 그러나 김지하는 이
변증법을 ‘죽임의 논리’라고 본다. 그 이유로 ‘모순, 대립, 투쟁하는 양극단이란 개념은 실재하지
않는 허구요, 추상적인 것이며, 그 중간이나 상호통합이란 것도 있지 않은 가상’이기 때문이다. 이
렇게 ‘허구, 추상, 가상’으로 현실을 쪼개고 조직하려 할 때 현실이라는 산 생명은 죽어버리기 때문
에 변증법은 ‘죽임의 논리’인 것이다. 23) 김지하에 의하면 생명, 즉 살아 있다는 것은 ‘아니다 - 그
렇다’(불연기연)로 살필 수 있을 뿐 제 3의 종합이란 없다. 따라서 변증법적 구조로 천부경을 해석
하는 것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우주만물의 변화의 이치를 죽임의 논리로 재단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최민자는 천부경의 ‘一’을 ‘하나(一)’로 표기하면서 이 ‘하나(一)’는 ‘궁극적 실재’이자 ‘근원
적 일자(一者)’이며 ‘우주의 본원’이라고 해석한다. ‘一’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과 표현이 어떤 위험
성을 내포하는 지, 본고 Ⅲ.2.5)항에서 다시 논의한다.
Ⅲ. 『천부경』의 ‘一’ 대한 김지하의 우주생명학적 해석
1. 우주생명학 개요
우주 운행의 변화원리와 만물의 변화와 생성의 이치를 담고 있는 『천부경』은 다양한 별칭을 가
지고 있는데, 천경(天經), 진경(眞經) 혹은 생명경(生命經) 등이 그것이다. 김지하의 우주생명학은
천부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우주만물 운행의 변화의 원리를 탐구하고 있는 데서 그렇다. 그
리고 동식물과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범위를 넘어 우주에 살아 있는 모든 만물과 현상, 즉 생명과
비생명,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뛰어넘어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원리를 탐색하고 있는 데서
더욱 그렇다.
시인 김지하의 우주생명에 관한 테제는 오래 전부터 그 싹을 틔우고 있었다. 시인은 민주화운동
의 투사로 열정을 불태웠던 젊은 시절에도 특정 이데올로기나 종교 그리고 어떤 조직에도 갇혀 있
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예민했던 김시인은 증조부로부터 내려오는 동학의 기운 그리고 공산주의
자였던 아버지를 둔 가문의 태생적 환경 그리고 6.25와 4.19 그리고 유신독재라고 하는 굴곡진
한국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날카롭게 다듬어진 예술가적 상상력이 가미되어 영성(靈性), 곧 ‘흰그
늘’, ‘시김새’, ‘모심’, ‘활동하는 무’ 등의 새로운 차원의 미학에 도달할 수 있었다. 1970년 대 박정
22) 김지하(2008), 293쪽.
23) 김지하(2008), 2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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