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7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P. 177
계연수의 『천부경』 이해 김철수, 전재우
月 開天節에 朴應龍·鄭昌和·朴龍琰·金柄周·李龍俊·李奉璃·許基浩·申讚禎·李陽甫·朱尚玉·
李東奎·金錫奎·孫榮麟·李振武 등 十四名이 추가로 發起文에 서명하니 모두 二十八名으로서
그때 회원이 총 五萬餘人에 달하였다. (중략) 檀學會報는 檀紀四二五二年 三月十六日, 創刊號
가 간행되어 第八號까지에 그쳤으나 49)
『대배달민족사』 1권 『환단고기정해』에도 이 부분에 해당하는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은 《커발한》
잡지, 월간 《자유》, 『한암당 이유립 사학총서』 등에 실린 글들보다 가장 나중에 쓰인 이유립의 글
이다.
十八年甲寅三月十六日에 與檀海李觀楫 石泉崔時興 松庵吳東振 白下金孝雲 碧山李德秀 一峰
朴應伯 昌春堂楊承雨 直松軒李龍潭 菊隱李泰楫 綠水徐靑山 白舟白亨奎等十二仙人으로 會於
朔州天摩山하야 結祭天血盟하고 明年에 又得白巖洪範圖 石洲李相龍之同意하고, 是年十月에
朴應龍 鄭昌和 朴龍淡 金炳周 李龍俊 李奉堣 許基浩 申讚禎 李陽甫 朱尙玉 李東奎 金錫奎 孫
榮麟 李振武等十四核郞이 追署發起文하다. 是年冬에 移檀學會于南滿洲寬甸縣紅石拉子區紅
石嶺山下하고 設倍達義塾하고 刊行檀學會報라. 50)
《단학회보》가 1919년에 창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커발한》의 글이 월간 《자유》에서
교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戊午七月’이 ‘그 이듬해’로, ‘檀紀四七五二年’은 ‘檀紀四二五二年’
교정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늦게 쓰인 『환단고기정해』에서는 각각 ‘明年에’와 ‘是年冬에’의 내
용으로 다시 교정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3월 16일에 창간되어 8호까지 발행된 기간은 계연수
가 피살되기까지인 1920년 8월 15일까지 가능하다. 즉 간행 가능한 기간은 1년 5개월이다. 2개월
마다 《단학회보》를 발행해야 되는 수치이다. 그러나 단학회가 3월 16일 대영절과 10월 3일 개천
절을 중요한 제천행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1916년 3월 16일에 창간되었을 경우, 1년에 2번 발간
되었다고 가정할 때 상식적인 면에서 훨씬 가능성이 높다. 단학회의 만주 관전현 이전 시기와 《단
학회보》 창간 시기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한다.
2. ‘홍익사서弘益四書’
광무1년(1897) 계연수(1864~1920)는 해학 이기(1848~1909)를 스승으로 모셨다. 두 사람이
가장 먼저 한 것은 ‘홍익사서’라고 이름 짓는 것이었다. ‘홍익사서’에 대하여 이유립은 『커발한문
화사상사』二와 『대배달민족사』 3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49) 「아직 표상없는 雲樵 桂延壽」(李裕岦, 『대배달민족사』 5권, 37~38, 39쪽.
50) 『桓檀古記正解』, 李裕岦, 『대배달민족사』 1권, 383쪽.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