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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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분과
하지만 전자와 후자의 분기점은 ‘삼극’이라는 술어를 선후천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엄청
난 차이가 생긴다.
우주를 3원적 구조로 본다는 입장에서는 『주역』과 『정역』이 같다. 새로운 사상에는 새로운 논리
가 필요하듯이, 정역사상은 비록 과거의 용어를 답습했으나, 내용은 과거와의 냉정한 결별로 나타
났다. 즉 노자老子의 ‘무극’과 『주역』의 ‘태극’을 융합하고, 다시 『서경書經』의 ‘황극’을 새롭게 해
석하여 하나의 통합 이론으로 독창적인 우주론을 정립하는 쾌거를 이루었던 것이다.
굳이 『정역』의 3극론을 들먹지이지 않더라도 김일부는 무극은 진리의 바다요, 황극은 진리가
현실에 펼쳐지는 생명 진화의 경계요, 태극은 무극과 황극이 살아 있도록 만드는 영원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다만 『정역』은 숫자 중심으로 설명한 까닭에 후학들은 괘의 구성 근거에 대한 관심보다
는 산술적인 대칭 관계에 집중하는 습관이 생겼다.
“(손을) 들어보면 문득 무극이시니 열이로다. 열하고 (손을) 굽히면 문득 태극이시니 하나로다.
하나가 열이 없으면 본체가 없는 것이고, 열은 하나가 없으면 작용이 없는 것이니, 합하면 토라.
중앙에 거함이 다섯이니, 황극이시다.” 31)
이 글은 3극 통해 새로운 형이상학의 정립을 겨냥하고 있다. 왼손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굽히고 펼치는 동작 중심으로 3극이 표출된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모두 펼치면 10무극[擧便无極,
十]이요, 엄지손가락을 굽히면 1태극[十便是太極, 一]이요, 새끼손가락을 굽히거나 펼치면 5황극
[合, 土. 居中, 五, 皇極]을 뜻한다.
이처럼 김일부는 무극과 태극과 황극의 3극 사이의 역학力學 관계를 수지도수와 일치시키는 논
리를 세웠다. 수지도수란 다섯 손가락으로 3극 사이의 유기적 운동은 물론 시간의 질적인 변화 과
정 및 정역팔괘도를 뒷받침하는 아주 간단한 셈법이다. 과거에는 태극과 음양오행으로 만물의 변
화상을 읽어냈는데, 김일부는 음양 2수와는 다른 3수 중심의 우주관을 수립했던 것이다.
다만 음양오행은 생성 차원을, 3극은 존재 차원을 다루고 있다. 전자는 자연계의 변화를 일으키
는 금화교역金火交易을, 후자는 하늘과 땅의 속 질서를 뜻하는 율려律呂를 뜻한다. 그러니까 하도
의 도상에서 음양오행은 겉(외부)에, 3극은 음양오행의 속(내부)에 위치하는 것이다.
과거의 역학자들은 하도의 중앙에 위치한 도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다. 심지어 그것이 3극인지도 몰랐고, 내부 3극과 외부 음양오행의 관계에는 아예 관
심조차 없었다. 김일부는 5개의 점으로 연결된 두 쌍을 10무극, 또한 10무극에 의해 둘러싸인 것
은 5황극, 5황극의 중심에 있는 것을 태극으로 규정했다. 하도는 3극이 외부의 음양오행을 주재하
는 형태를, 낙서는 5황극을 중심으로 음양오행이 만물을 지배하는 양태를 띠고 있다.
31) 『正易』「十五一言」, “擧便无極, 十. 十便是太極, 一. 一, 无十, 无體; 十, 无一, 无用. 合, 土. 居中, 五, 皇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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