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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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분과


                 한국의 국통을 확인하고, 우리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광복운동으로 천부 복본과 홍익인간의 염

                 원이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vi. 공자(BC551-BC479)는 중국의 고대사를 서경이라는 공인된 역사를 그의 역사철학사연구원
                 칙인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원칙을 지키고, 궤변詭辯, 궤력詭力, 귀신 등 신비적이고 비과학적인 것

                 을 배제하고, 논리적 증거주의를 따르는 최초의 역사 전기 전수자로 사마천의 사기는 이런 공자의
                 원칙에, 존화를 더한 어용사학자이지만 그것은 그가 궁형까지 당한 처지로 보아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고 왕국유교수의 <이중증거법二重證據法>, 21세기의 홍콩
                 대학교수 고 요종이교수의 <오증증거법五重證據法>, 시카고대학교 Edward L. Shaughnessy(夏

                 含夷) 교수의 <Evidence+Evidence>의 다중증거법에 따라야 한다고 다중증거주의를 주장한다.
                 필자가 천부경을 해설하기에 앞서 천부경이 실사라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하여 이웃나라 역사로 유

                 가류서에 등장하는 공자가 편집한 것으로 알려진 3경4서(샤우네시 교수는 OLD TEXT, NEW
                 TEXT로 번역함), 특히 4서 하나인 대학 3강령(천도, 지덕, 인륜)에서 시작해서 삼경 중 역사철학

                 인 서경의 <事覲東后>, 미자, 홍범, 김부식의 삼국사기, 1000년 전, 최치원(857-900+)의 동서학
                 론, 그보다 다시 천년 후의 최제우(1824-1864)에 의하여 동학사상이 부활하는 천부경사상에 대

                 한 직접 또는 간접적인 연구결과를 공부한 결과가 본 논문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v. 2013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초빙교수로 학생들에게 새 유학교과서로 쓰도록 한 것으로
                 <한국유학의 연원과 전개(The History and Practice of Korean Yohak)> P267-268 쪽에 <대

                 학3강령 제1장 경장>주석으로 처음으로 <천지인-천부3인>에 대하여 언급하고, 그 후 <최치원의
                 현묘지도연구>, 지난해 대한사랑에 기고한 <기자조선 연구>를 통해서 다중 증거법을 적극 활용하

                 였다. 서경 순전 “사근동후”조를 통해 조선의 인륜가 오행사상이 주중원에 전수된 것과 홍범을 기
                 자의 입을 통해 “홍범구주”, “참전계”, 조선의 8조금법=홍범8조, 참전계366사”가 중국에 전승된

                 데 대하여 그 다중증거를 제시했다.
                   오늘은 천부3인과 천부경연구로 한국역사철학, 세계 인류의 문화의 시원경전인 <천부3인과 81

                 자천부경>을 해설하고 특히 미국영어 원어민이고 숭산 이 행원선사의 제자인 차세대 제2세재미한
                 인인 사랑하는 딸(공행정법전문 변호사)의 교정을 받아 <알기 쉬운 영문 천부경>을 상재케 되어

                 감사하고 기쁘다. 필자는 미국에 거주여 한국학을 직접 체험하기 어려워 새로 발견된 유적, 유물,
                 기타 역사자료를 접할 기회가 적어 논문 저술에 큰 한계가 많으나 관련국내역사철학연구서적과

                 신용하, 최민자, 이기동, 권태훈, 이승헌, 조하선 등 천부경에 대하여 집중하였고, 직, 간접적으로
                 관계되는 저술, 강연등과 대한사랑과 환단학회 등에서 간행한 여러 책자들과 강연 등을 두루 참고



                 라 잘못표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성계가 명에 고 조선(번조선 마지막 왕 기준)의 일을 들어 조선이라는 국호를
                 승인을 받아 사대를 공식화한 것도 이런 근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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