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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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3인天符三印과 81자八十一字 천부경연구天符經硏究 림관헌
군세기, 단기고사, 고운집,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과 그 궤軌를 같이하는 우리 상고사합본上古史合
本인 환단고기와 그 주석서 등 역사적 구전과 전기를 교차交差증거하고, 공자의 서경, 대학, 시경,
9)
주역, 불경, 노자의 도덕경, 예수의 성경, 무함마드의 천진사(회회교) 코란 등, 각종 성경 들은 최
치원이 본 당나라시기의 전기, 유적 등을 교차증거하고, 우리의 민속사, 선사, 화랑세기 등을 교차
증거 하는 다중증거법을 원용, 삼국사기의 <난낭비 서>나 삼국유사의 <천부3인>을 증거 할 수 있
었다.
환인시대의 <천부3인>, 배달국의 <녹도문천부경>, <가림토천부경>과, 단군조선시대의 가림토
문 천부경, 고구려, 대진국(발해), <갑골문천부경>, 최치원의 <81자한자본천부경>, 오키나와 해
저관광구의 <81자 고 암각> 등과 366자 삼일신고, 366사 참전계의 8리훈과 공자가 편집하고 인
용한 서경,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참전계(參佺戒) 8훈을 보고 기자가 상나라의 현실에 맞게 홍익규
범인 홍범구주로 만드는 등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 역사철학의 근간인 천부경과 홍익인간사상이 현존하는 크로마뇽인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最古,) 가장의 높은(最高) 역사철학임을 확신하고, 이 논문이 조선식민주
의의 잔재와 중국공산당의 이념적 민족주의의 희생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
논문이 한국역사철학을 확인하고, 환인 천제의 환국, 환웅의 배달국, 전 조선(단군조선), 후 조선
(삼 조선), 부여, 삼국, 신라와 발해 남북조, 고려, 조선 10) 에서 대한민국광복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8) 난랑비 서;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조에, 난낭(鸞郎)비 서문을 인용하며, 신국(神國)인 신라에 현묘지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하는데 그 가르침은 선사(先史=박재상이 부도지 등에서 보이는 천부와 신국의 역사)에 상세히 적혀
있다고 하고, 같은 삼국사기에 신라47대헌안왕이 영명한 어린 화랑 응렴(843-875)을 사위로 삼아 18세에 왕위(8612
-879)에 오르게 하니 그가 신라 마지막의 중흥조인 경문왕으로 아들2, 딸 하나 서자 하나 등 네 자녀가 왕위를 이었으
며, 중국에서 돌아온 최치원이 받들은 왕들이니 가히 화랑응렴을 하늘의 뜻을 실천하는 난조(鸞鳥)와 같은 화랑으로
찬탄한 비문을 써, 응렴화랑의 풍류를 태우의 환웅의 아들인 풍씨의 조상, 복희의 유풍으로 본 것은 당연한 것 같다.
9) 聖經; 성경은 글자그대로 성인의 말씀이니, 성인의 가장 <크고 높은(宗) 가르침(敎)이 종교이다. 서양문물을 가장
먼저 들여온 일본인들이 서양학자들이 말하는 religion((the belief in and worship of a Superhuman controllin
g power, especially a personal godor gods(from Oxford Language)을 한자로 번역한 낱말이다. 따라서 서양의
종교는 신이나 귀신을 믿는 행위였으나 그런 서양인들의 믿음의 종교(큰 가르침)를 성인들의 사상과 철학을 가르치는
것도 신을 믿는 집단행동의 일종으로 보고 종교라고 번역 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서양의 종교는 신이나 신들의
말씀을 진리로 믿는 데서 출발하고, 동양은 큰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하다가 스스로 옳다고 깨달아 그 스승의 가르침을
믿게 되는 것이니 믿음의 선후가 다를 뿐 그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은 동일하다는 면에서 괜찮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10) 조선; 역사상 조선이라는 나라가 등장하는 것은 언제부터이며 그것이 통치자가 자기나라이름으로 쓰고. 남도 그렇
게 부르기 시작하였을 것이나 중원 땅에서 쓰여 진 것이 분명한 산해경에서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산해경은 중원
지방에서 편집한 지리서라면 서경은 중원에서 편집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데, 산해경에서는 조선의 위치를 말하고
있으며, 청구와 함께 중원의 동쪽지방을 통틀어 조선이라 한 것은 2,000수백 년 간을 동후가 관경하는 단군조선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것이다. 환인, 환웅, 단군은 하늘의 아들임으로 오직 한 사람의 제가 있을 뿐임으로 순은 단군을 동후라
불렀고, 요임금은 단군에 불복했음으로 제라 자칭한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 자기나라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黃
황제帝헌원, 환웅의 배달나라, 중국의 삼국지와 조선의 삼한과 삼조선관경이 시작된 후가 아닌가?하는 가설을 조심스
레 세워본다. 단군세기에서 소태단군52년(BC1286)개사원욕살 두막루인 우현왕 고등의 손자 색불루(BC1286-BC1
238재위)가 무혈혁명으로 선위를 받고 진조선왕이 되어, 소태단군의 섭주 기수 요동욕살인 서여우를 번조선왕(단기고
사에서는 奇子朝鮮)으로 삼고 마한왕을 막조선으로 삼한을 삼조선관경토록 합의하여, 비로소 그 연방체를 조선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 같다. 따라서 삼국유사에서 단군이 국호를 조선으로 했다함은 삼한을 조선이라 부른 것을 두고 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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