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P. 38

정신문화 분과


                 이지 않을뿐더러,       22)  고조선에서 나온 부여와 고구려에는 형이 죽으면 형수에게 수절을 강요하기

                 는커녕 형수를 아내로 삼는 풍습이 있었다.               23)  따라서 저 경전의 출처를 고조선의 기자나 고구려의
                 을파소로 소급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다.                   24)

                   선가 경전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고 가장 체계적이면서도 가장 평이한 경전인   성경팔리  가 거
                 의 논의되지 않고 있음은   천부경  에 과도하게 편중된 연구경향과 함께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평이한 경전보다는 난해한 경전을 해독해내겠다는 공명심이나 도전정신 외에도, 종국에는
                 공리공담이 되어버린 이기론이나 사단칠정론과 같은 사변철학에 몰두했던 조선 유학의 연장선상

                 에서 이해 가능한 현상이다.          25)  우리의 고대 정신을 밝혀내려는 시도까지 유교적 편향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유교적 관성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26)



                 Ⅲ. 샤머니즘 경전은 없다




                   동서를 막론하고 남의 고전과 경전을 연구하고 강의해온 학자로서 우리 정신의 원형을 간직한

                 고대의 경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우리 정신의 원형이라 함은 유불도(儒佛道) 삼교가
                 전래되기 이전의 우리의 시원적 사유를 일컬음이고, 시기적으로는 이를수록 더욱 좋겠다는 막연
                 한 생각을 해왔다. 단군사화(史話)에서 보듯이 그 시원적 사유의 정체는 선(仙)으로 표현되는 샤머

                 니즘이다.    27)  우리 시원 사유의 경전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 샤머니즘의 경전일 것이다.



                 (  참전계경  의 편제로는 187조)은   중용  과   대학  의 신기독(愼其獨)에,   참전계경  의 284조(이는   성경팔리  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명심보감  의 첫 구절에 대응한다.
                 22) 팔조범금은 3개조만이 『한서』 「지리지」에 전해오고   태백일사  와   단기고사  에 각기 다른 내용의 8개조가 소개
                 되어 있다.
                 23) 陳壽,   三國志  , 卷30, 「魏書」, <東夷傳>, 【夫餘條】, 兄死妻嫂
                 같은 구절이 다음에도 보인다. 范曄,   後漢書  , 「東夷列傳」, <夫餘條>;   梁書  , 「東夷傳」, <高句驪條>;   南史  , 「東夷列
                 傳」, <高句麗條>.
                 24) 그 외에   단군세기』에서 3세 가륵단군 시대의 삼랑 을보륵의 말은   논어  의 「안연」 11장에,   단기고사  에서 6세
                 달문단군 시대의 팔부루의 말은   대학  의 3강령 8조목에, 13세 홀달단군 시대의 유위자의 말 중 첫 부분은   도덕경  의
                 1장에, 17세 여을단군 시대의 고수노의 말은   맹자  의 「진심」 상과 「양혜왕」 상에 대응한다.
                 25) 우리 시대에 만연한 공명심 역시 유교의 출세주의 가치관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유교에는 내세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가와 인정에 집착하는 과도한 현세지상주의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26) 반재원과 허정윤은 중국의 유교 문헌과 우리의 선가 문헌 사이의 문자적 대응을 근거로* 중국의 유교가 우리의
                 선가로부터 연원한 것으로 본다(반재원·허정윤 2007, 88쪽). 그러나 우리의 선가 문헌의 연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
                 서 이러한 추론은 윗돌(유교)을 빼서 아랫돌(선가)을 고이는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일 수 있다. 유교 문헌의 이런저런
                 용어나 문구를 우리의 선가 문헌에서 차용된 것으로 보는 해석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참일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한국판 문화·역사공정의 혐의에 직면할 수 있다.
                 * 여기에는 반재원이 번역한   홍사한은  (鴻史桓殷)도 포함된다.
                 27) 이는 우리에게만 특화된 것도 아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어느 문화권이나 시원의 사유는 샤머니즘이다. 중국측
                 사서(史書)의 기록을 보건대 우리는 중국에 비해 샤머니즘의 영향력이 더 강했고 그 전통을 고려때까지는 더 잘 간직했
                 던 것 같다(이능화 1927, 100쪽).* 무속(巫俗)의 무(巫)와 가무(歌舞)의 무(舞)는 그 소리에서뿐 아니라 춤출 때 나풀거
                 리는 소맷자락을 형상화한 문자라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중국측 사서는 우리 민족이 가무에 능했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38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