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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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학문: 우리 정신의 철학적 복원 이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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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군신관계를 넘어서는 부자관계로 이해하였다. 유교와 짝을 이룬 화
이관(華夷觀)에 기초한 중화주의에 가스라이팅 되면서 조선은 자발적으로 명나라의 아바타로 화
한 것이다. 실리와 힘의 논리로 이해해야 할 외교관계를 천리(天理)나 의리(義理) 의 차원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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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하다보니, 조선은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화(華)가 아닌 이(夷)의 나
라라는 점에서 인정하지 않으면서 조선이야말로 사라진 명나라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시대착오적
환상에 빠져들었다. 단군과 고조선으로 상징되는 이(夷)의 상고사는 조선인 자신에 의해 지워지고
잊혀졌다.
이처럼 유교가 중국을 받드는 의식화 교육의 커리큘럼이었기에 유교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절대
로 사대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이(夷)의 상고사를 되찾을 수도 없다. 이는 마르크시즘을 극
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사회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조선, 유교, 중국이 삼위일체를 형성해왔다는 사실은 조선의 붕괴에 즈음하여 출현한 두 가지
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최남선, 신채호, 정인보, 김교헌 등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역
사학의 대두이다. 이들은 조선의 소중화 이데올로기로 절맥될 위기에 처해 있던 단군과 고조선을
부활시키는 대륙사관을 전개하면서 동양사 = 중국사의 일방적 등식을 깨뜨렸다. 둘째는 환단고
7)
기 , 규원사화 , 단기고사 등의 선가(仙家) 사서와 천부경 , 삼일신고 , 성경팔리 (聖經
八理) 등의 선가 경전의 출현이다. 이들은 조선의 유교 이데올로기에 묻혀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8)
선가의 부활을 알리며 한편으로는 민족주의 역사학보다 더 웅혼한 대륙사관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의 상고시대로까지 소급되는 삼신(三神) 신앙과 사상을 펼쳤다. 결국 조선이 죽어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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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대안적 역사관과 세계관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치에 조선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가스라이팅(gaslighting) 된 것이다.
5) 朝鮮王朝實錄 , 「仁祖實錄」, 券22, <仁祖 八年>, 【3月 26日 丙午】, 我國之於天朝 義君臣而情父子也
6) 의리는 당대의 용법으로 도덕법칙, 당위를 뜻한다(허태구 2019, 16쪽).
7) 우리는 최치원이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언급한 선(仙)을 우리 고유의 사상을 표현하는 용어로 삼는다.* 선가는
그러한 전통을 계승하는 흐름을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 金富軾, 三國史記 , 「新羅本紀」, <眞興王>,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8) 참전계경 (參佺戒經)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준희와 유영인은 성경팔리 가 바른 이름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유립은 ‘참전계경’으로 서명을 바꾼 것뿐만 아니라 원전의 ‘응(應)’장 6개 절에 빠져있는 문단을 창작·삽입해서 문단
수 358개의 경전으로 만들어냈다. 여기서 박노철*이 원전 성경팔리 를 옮기는 과정에서 범한 오류를 이유립이 그대
로 답습한 곳이 발견되고, “참전”(參佺)이란 용어를 포함해 원전의 어구들을 상당수 변조해 참전계경 이라는 새로운
경전을 만들어 자신이 창시한 태백교의 기본 경전으로 활용했다. (조준희·유영인 2015, 774쪽)
반면 송호수 교수는 이유립의 전언을 빌어 “ 참전계경 이라는 제호를 성경팔리 라고 정훈모**가 개제(改題)하였다”
(송호수 1987, 238쪽)고 주장한다. 성경팔리 는 서문에서 고조선의 기자(箕子)가 원방란에게 명하여 주해하게 했다
고 밝히고 있고,*** 태백일사 는 참전계경 을 고구려의 을파소의 저작으로 소개하고 있다.****
* 대종교 신도.
** 단군교의 교주.
*** 聖經八理 , 序. 箕子曰 檀君神聖之世以八理敎人 […] 命袁方蘭註解
**** 李陌, 太白逸史 , 「蘇塗經典本訓」, 參佺戒經 世傳乙巴素先生所傳也
9) 환인, 환웅, 단군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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