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0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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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남자를 뽑아 장식하고 단장하는 측면이 있었기에, 조선 당대의 무당의 복장 또한 화려하므로 화랑
의 이름을 멋대로 차용한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우려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사례만 보더
라도 고대 무(巫)의 성격이 많이 속화된 모양이다. 허나 필자는 화랑의 명칭이 조선의 무당을 칭하
는 말로 남은 것은 외적인 것 외에 제관으로서의 화랑, 즉 신을 모시고 영험한 능력을 현실에서 구
사했던 화랑의 무(巫)의 기능적 측면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아무리 곱게 단장하였다 하더라도 기
본적으로 화랑의 외형은 무사(武士)에 가깝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현묘지도’는 풍류의 ‘궁극적인 면’을 말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심오하고 오묘
한 그 지극한 경지는 궁극의 근원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풍류의 이러한 특성이 화랑도라는 조직체
로 실제화되고 구체화되어 여러 신비로운 행적을 역사 속에 남기게 된 것이다.
2) 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
이제 ‘②실내포함삼교(實乃包含三敎)’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풍류는 유불선(儒佛仙) 삼교의 외
래 사상이 유입되기 이전, 이미 삼교합일(三教合一)의 형태로 존재한 한국사상의 원형인 것이다.
실제 최치원은 16년간 중국의 유불선을 접한 후 "내 나라에 건너가서 풍류도를 하느니만 못하겠다
"는 말을 남기고 28세(885년)에 신라로 돌아온다. 34) 유불선에 선행하여 존재하면서도 후일 접하
게 된 유불선의 요소를 이미 다 가지고 있는 한민족 문화정신에 대한 주체적 자각과 우수성을 동시
에 드러낸 말이라 하겠다.
이렇듯 풍류의 ‘실내포함삼교’의 측면은, 후일 다양한 학파의 학설에서 일부를 뽑아 모아 하나의
사상을 구성한 중국의 잡가(雜家)나 도교를 중심으로 삼교합일을 시도하였던 전진도(全真道)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잡가는 사상적 경향을 모으는 데 있어 유기적인 결합이 잘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우니 잡(雜)이라고 칭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서적은 『회남자』, 『여씨춘추』 등이 있는데
이 책들은 그동안 있었던 제자백가 내용을 수집해서 잡다하게 책에 수록한 정도이다. 전진도 35) 는
유불선 합일을 표방했지만 현실정치 참여와 같은 실질적인 유가사상의 요소는 보이지 않고 단지
충,효,인 등의 유교 덕목을 참회문이나 기원문에 쓴다. 또한 불교의 핵심인 마음세계에 관한 체계
적인 심리분석이나 의식정화의 기법들을 발전시키지는 못하였고, 다만 불교가 자신들의 도교 수
련에 밑바탕이 된다는 걸 긍정한 정도에 그친다.
이처럼 유불선 합일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어왔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소위 공부를 좀 했다는
자들이 유불선 합일을 표방하고 나서지만 지금껏 상고이래 삼교합일이 온전히 실현된 것은 전무
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33) 조선후기 실학자.
34) 김상일, 「풍류도와 선맥 그리고 차축시대」, 모심과 살림 학교 발표 논문(2003년 10월)을 허호익, 「최치원의 「난랑
비서」의 해석의 여러 쟁점」, 『組織神學論叢』 Vol.0 No.31, 한국조직신학회, 2011, 273쪽에서 재인용.
35) 김승혜, 「道敎 全眞敎《玄門早晩功課經》硏究, 道敎文化硏究」, 『道敎文化硏究』 Vol.20, 한국도교문화학회, 2004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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