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7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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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난랑비서」의 風流에 대한 고찰 이주희
사람들이 떠올리는 신의 존재가 이러하다. 바람과 신은 사물을 변화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기에 그 속에 신비로움과 생동감이 깃들어있다. 서양에서도 바람을 신으로 비유하는 말이
있는데, 헬라어로 프뉴마(pneuma)는 성령이자 바람을 뜻한다. 손으로 잡을래야 잡을 수 없고 어
디서 시작했는지 어디서 끝나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그 중심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바람은 신의
움직임이요, 신의 상징성을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풍(風)은 신(神)과 통한다. 또한 최치원은
『계원필경』에서 ‘상고(上古)의 風’을 언급하는데 다음과 같다.
… 상고의 풍風을 잘 일으켜서 길이 대동大同을 이루어 무릇 털을 이고 이빨을 머금은 것이나 물
속에 잠긴 것, 공중을 나는 것들까지도 모두 자비를 입어 해탈하게 한다.
상고시대의 풍(風)을 부흥시켜 크게 하나됨을 이루면 짐승, 물고기, 새들까지도 해탈에 이른다
고 하니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佛)의 경지를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고 있다. 도교에서
는 부처를 금선(金仙)이라 하니 불(佛)과 선(仙)은 상통하는데, 풍(風)은 이 양자개념을 모두 포함한
다고 볼 수 있다. 최치원은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國有玄妙之道, 曰風流’라 하였으니, 풍(風)은
도(道)이기도 하다. 도는 궁극적 진리로써 다양하게 쓰이나, 이는 유교에서 이치라고도 하고, 이치
(理)는 곧 본성(性)이라 하니 풍을 리(理)요 성(性)으로도 볼 수 있다. 이처럼 풍(風)은 한 교파의 특정
가르침에 국한되는 말로 볼 수 없고, 보다 더 폭넓은 의미에서의 ‘궁극적 근원 세계’를 뜻한다. 때론
기준이 되기도 하고 목적지가 되기도 하는 神, 仙, 佛, 道, 理, 性 등의 근본적 세계를 두루 포함하는
말을 자연세계의 바람이라는 상징으로 ‘風’을 썼다고 본다. 정리하자면 풍(風)은 한마디로 신(神)이
다. 그러나 이 신은 仙, 佛, 道, 理, 性 등 삼교에서 말하는 근원적인 경지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보아야겠다. 그렇기에 풍류라는 두 글자를 놓고 본다면 풍(風)은 근원적 세계를 지칭하는 바탕 즉
체(體)가 되고, 류(流)는 작용적 측면의 용(用)이 되겠다.
‘류(流)’는 화(化)이며 일(一)이다. 흐름이란 퍼져나가는 것이며 공명을 일으켜 다른 사물을 같은
울림의 상태로 변화시킨다. 그럼으로써 다른 사물들을 하나로 한 덩어리로 만들어 놓는다. 이것은
맥박이 뛰는 생명의 모습이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빛의 활동이며, 자타를 구분 않고 베푸는 뜨거
운 사랑이다. 바람과도 같고 물결과도 같이 확산시켜 나가는 양상이니 결론적으로 홍익(弘益)이
다. 현실에서 이는 곳곳에 미치는 정치(政治)적 다스림이 될 수도 있고, 교화(敎化)의 성격을 띨 수
도 있다. 혹은 문명을 전수하는 것으로도 규정될 수 있다.
이로써 ‘풍류’란 신도(神道)를 일으켜서 만유생명을 교화하고 하나되게 하는 것이다. 흔히 쓰는
표현으로 ‘신바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때 풍(風)이 근원적 세계인 신(神)과 의미가 통하고,
류(流)는 바람과 뜻을 같이 한다. 이처럼 풍류는 폭넓은 세계를 아우르는 원형질이기에 이를 뿌리
로 정치, 교화, 종교, 예술, 사회문화, 조직체 등의 인간생활 전반이 꽃 필 수 있었다. 「난랑비서(鸞
郞碑序)」에서 최치원이 말하는 ‘①현묘지도, ②실내포함삼교, ③접화군생’은 이런 풍류의 특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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