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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난랑비서」의 風流에 대한 고찰 이주희
데, 이 『선사(仙史)』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지만 크게는 ‘화랑의 역사서’라고 보는 것과 ‘우리 고유
의 선(仙) 혹은 신선(神仙)사상의 사서’라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화랑을 국선(國仙)이라고도 하고, 풍류와 화랑도가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근거로 화랑의 역사서로 추측하며 김대문(金大問, ?~?) 14) 의 『화랑세기』로 특정 짓기도 한다.
허나 필자가 『화랑세기』를 확인해보니, 김대문은 「후기」에서 ‘혹 선사仙史에 하나라도 보탬이 있
을까’ 15) 라고 하며 저작이 선사에 보탬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하여 화랑의 역사서로 볼 수는 있을
지 몰라도, 『화랑세기』와 『선사(仙史)』는 별개로 보는 것이 옳다.
후자의 근거는 풍류가 국유현묘지도로써 우리 고유의 사상이기에 한국 고유의 선(仙)사상이 담
긴 사서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 고유의 선(仙)이라 함은 중국 도교의 신선사상과는 구별되는
한국 자생적(自生的)인 선(仙)사상으로써, ‘고신도(古神道)’라고도 하고 ‘신교(神敎)’라고도 일컬어
진다. 필자도 이 견해에 동의하는 바, 이는 시기적으로도 중국보다 선재했던 것이기에 오히려 중국
도교사상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도교사』
에서 언급된 다음 구절이 이를 말하고 있다.
靑鶴集所記則 桓仁眞人爲東方最初之仙祖
… 靑鶴集云 吾東道派之最有曰 桓仁眞人爲東方仙派之宗
단군 이전 환인(桓仁)을 동방 최초의 선의 조상(桓仁眞人爲東方最初之仙祖)으로 보고, 동방 선파의
머리(桓仁眞人爲東方仙派之宗)로 말하고 있으니 사상사(思想史)에 있어 중국 도교의 선사상을 앞서
는 원형 선이라 할 만하다. 환인 뿐 아니라 단군도 선인(仙人)이라 불렸는데, 『삼국사기』 동천왕 21
년(247)조의 동천왕이 평양성으로 천도하는 기사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평양은 본시 선인(仙
人) 왕검(王儉)의 터전이다. 16) ” 라는 구절인데 이는 단군왕검을 선인으로 지칭한 최초의 기사라고
알려져 있으며, 고구려 사람들이 단군을 선인으로 보고 인식했다는 직접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이능화는 '[단군]왕검'은 혹 신인(神人)이기도 하고 혹 선인(仙人)이라고도 하는데, 그 수명이
아주 길어서 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상고 때에는 '신'과 '선'의 분별이 없었다
한다. 이능화는 『조선신사지』에서도 상고 때에는 '신'과 '선'의 분별이 없었기 때문에 단군의 행
적은 신이기도 하고 선이기도 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단군을 '왕검신인' 이라
고 일컫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왕검선인'이라고 일컫기도 한다는 것이다. 17)
14) 신라 중대의 학자이자 정치가, 최치원의 선배 학인이기도 하다.
15) 김대문, 이종욱 역주해, 『화랑세기』, 소나무, 2005, 368~369쪽, 其或於仙史有一補者歟.
16) 김부식, 『삼국사기』권17, 「고구려본기」제5, 동천왕 21년, 二十一年, 春二月,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平壤者, 夲仙人王儉之宅也.
17) 이종성, 「근대와 만난 한국의 도교 –이능화 『조선도교사』의 기본입장을 중심으로-」, 『동서철학연구』 Vol.58,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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