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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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수운 최제우의 생애와 사상 김삼웅
에서 현실 비판과 개혁 사상에 영향 받은 피지배 민중의 의식 수준의 향상과 높아진 지각도 등을
들 수 있다.
동학은 주자학적 전통으로 굳게 닫힌 전근대의 강고한 철벽에서 인권ㆍ평등ㆍ자존을 바탕으로
백성들을 깨우치고, 삶의 주체로서 민족정신을 일깨워서 근대의 문을 열었다. 봉건적 전근대의 철
문을 닫고 근대의 광장을 연 것이다.
동학은 창도 초기가 도인들의 각성기라면, 중기는 교조신원운동과 교세확장, 후기는 동학농민
혁명으로 전개되었다. 동학교조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처형한 정부는 내적인 개혁요구와 세계사적
인 변혁의 사조에 문을 굳게 닫아 걸고 있다가 강제 개항을 맞게 되었다. 결국 이같은 상황에서 동
학은 제국주의의 침투에 의한 반식민지화와 국내 봉건적 관료층의 수탈로 신음하는 피압박 민중
의 해방운동과 반봉건ㆍ반외세 투쟁을 위한 혁명이념으로 나타났다.
근대의 문을 연 동학
나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동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배움이 깊지 못하여 언
저리만 맴돌고 있지만, 그 시대에 동학이 있었기에 우리도 낡은 봉건의 철문을 열고 근대의 길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인식한다.
영국의 청교도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의 대혁명, 독일의 종교개혁, 러시아의 볼셰비키혁
명, 일본의 메이지유신, 인도의 샤티그라하운동, 중국의 신해혁명을 생각하지 않고는 이들 나라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과 동렬에 놓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무엇일까. 1919년 3ㆍ1혁명을 들 것
이다. 3ㆍ1혁명의 물꼬를 더듬어 올라가면 동학농민혁명에 이르고, 더 소급하면 발원지는 최제우
가 창도한 동학에 다다른다. 동학도가 농민혁명의 주축이 되고, 동학이 천도교로 개칭하면서 항일
투쟁의 원류가 되면서 기독교ㆍ불교와 더불어 3ㆍ1혁명의 모태 역할을 하였다.
천도교의 역할이 없었어도 3ㆍ1혁명이 가능했을까, 동학이 없었어도 농민혁명이 가능했을까에
상도할 때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의 역할은 실로 지대하다. 인도에 “북소리만 듣고 춤을 출 것이 아
니라 북치는 사람을 찾아라”는 속담이 전한다. 낡은 전근대의 성곽에서 근대의 북을 친 사람이 최
제우라면 과언일까.
프랑스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케네(1694~1774)로 대표되는 중농주의자들, 디드로(1713~
1794)로 대표되는 백과전서파, 장 자크 루소(1713~1784)로 대표되는 권력분립과 인간평등사상
론자들의 존재이다. 케네의 ‘중농주의’는 “토지는 농민에게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디드로의
『백과전서』는 “세계에는 기독교 외에 많은 종교가 있고, 왕정 외에 여러 정치형태가 있다”는 것
을 가르치고, 루소는 “어떤 사람도 부(富)를 통해 다른 시민을 살 수 있을 만큼 부자는 아니고, 또
어떤 사람도 몸을 팔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해서는 안 된다”는 인간평등사상을 전개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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