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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최치원 「난랑비서(鸞郎碑序)」에 대한 검증  최영성



                 일 수도 있으며, 명산대천의 영기(靈氣)를 받아 대자연과 교감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국토 순례를

                 통해 애국심과 국토애를 고취하자는 의미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다만 화랑도가 수련단체임을 감
                 안할 때 기도와 주술 등 종교적 행위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③의 이유를 영지(靈地)

                 순례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 판단한다. 이는 재래의 고산신앙(高山信仰)과도 관련이 있다. 화랑의
                 낭도들이 유람한 곳에 선유(仙遊)나 강선(降仙)의 설화가 생겨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61)  고대의

                 종교에서는 영가무도(詠歌舞蹈)와 산악 순례가 필수적이었다.
                   화랑도의 전인적 교육 방법, 수양 방법이 이와 같았다. 현좌충신(賢佐忠臣)과 양장용졸(良將勇

                 卒) 62) 은 물론 ‘천지와 귀신까지 감동케 한’          63)  향가(鄕歌)의 작가와 불교계의 지도적 위치에 오른
                 승려들이 화랑도에서 배출되었다. 특히 ②와 ③의 수양 방법은 예술 방면, 종교 방면에서 우뚝한

                 자취를 남겼으며, 화랑의 집단을 풍월도(風月徒) 또는 풍류도(風流徒)라는 별칭을 얻는 데 큰 구실
                 을 하였다.

                   화랑의 고사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 ‘신비성’ 또는 ‘영명성’의 측면이다. 진평왕 때 향가
                 한 수로 왜구가 물러가도록 한 융천사(融天師)의 사례를 비롯하여 그 예가 많다. 해가 둘이 나타나

                 서 열흘 동안 함께 비치는 괴이현상을 도솔가(兜率歌)로 해소한 월명사(月明師), 귀신을 부려서 다
                 리를 놓았다는 비형랑(鼻荊郞), 노래와 춤으로 열병(熱病)의 신을 쫓아낸 처용랑(處容郞), 호국신의

                 계시에 따라 적국의 정탐꾼인 백석(白石)을 체포한 김유신(金庾信)의 사례가 바로 화랑의 고사이거
                 나 화랑과 관련 있는 것들이다.           64)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화랑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가 ‘무(巫)’에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그 배경에 한국사상이 지닌 영명성의 측면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필자는 이성·감성·영성을 각각 ‘길〔道〕’과 ‘힘〔力〕’과 ‘빛〔光〕’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본다. 길은

                 나아가는 방향이요, 힘은 어떤 일을 해내는 에너지요, 빛은 어둠을 깨뜨리는 광명이다. 길이 있어
                 도 힘이 없으면 나가지 못하고, 길과 힘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제 길로 나아가기 어렵다. 이 세 가지

                 는 진(眞)·선(善)·미(美)의 세 영역에 나누어 배치할 수도 있겠다. 이성이 ‘선’으로서 윤리와 철학
                 쪽으로 연결된다면, 감성은 ‘미’로서 문학과 예술 쪽으로, 영성은 ‘진’으로서 신앙과 종교 쪽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세 영역을 포괄하여 현실에서 기능하는 것이 풍류라는 점에서 실로 ‘현
                 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 사상의 주류는 유교사상이다. 유교사상은 합리적 성격이 강하다. 『논어』에서 “공자는 괴·
                 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았다”             65) 고 한 구절이 이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유자(儒者)들의 지

                 나친 합리주의적 태도에 대해, 고려 중기의 문호(文豪)인 이규보는 「동명왕편(東明王篇)」을 지어
                 회의(懷疑)를 표시한 뒤,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신비적 요소를 지닌 고유사상이 있었음을 강조하였



                 61) 영랑(永郎)·술랑(述郎) 등 사선(四仙)이 놀고 갔다는 명소는 대부분 영산(靈山)이다.
                 62) 『삼국사기』 권47, 「김흠운전(金歆運傳)」 “論曰: …… 大問曰, 賢佐忠臣, 從此而秀, 良將勇卒, 由是而生者, 此也.”
                 63) 『삼국유사』 권5, 감통편, 〈月明師兜率歌〉 “羅人尙鄕歌者尙矣, 盖詩頌之類歟! 故往往能感動天地鬼神者非一.”
                 64) 이상, 『삼국유사』 권1-2, 기이편 및 권5, 감통편 참조.
                 65) 『논어』, 「술이(述而)」 “子不語怪力亂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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