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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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나’ 속에 ‘일체’를 함축하는 씨알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생(生)·장(長)·수(收)·장(藏)
으로 모습이나 성질을 바꾸어 가며 변화를 지속한다는 것이 동양 생명사상의 골자다. 최치원은 조
국 신라를 예찬하면서, 신라는 동방으로 인(仁)을 실천하는 나라라고 하였다. 이어 “낳고 변화하며
낳고 변화하는 것이 진(震: 동방)을 터전으로 한다”(「新羅迦耶山海印寺善安住院壁記」)고 하면서 ‘생
화생화(生化生化)’란 말을 사용한 바 있다.
풍류는 생명의 힘이다. ‘생’에는 ‘탄생〔出生〕’과 ‘살림〔生之〕’의 의미가 들어 있다. 최치원은 「지
증대사비」에서 동방을 ‘동방(動方)’이라 하였다. 만물이 처음으로 생겨나는 방위〔萬物始生之方〕라
는 의미다. 그는 또 우리에게는 애초부터 어진 마음과 호생지덕(好生之德)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였
다. “대지의 정기가 만물을 낳아 잘 살도록 하는 데 모아졌다”(精合發生)고도 말하였다. 59) 최치원
이 생각하는 한국사상의 두드러진 특질은 ‘생명사상’인 듯하다.
다음 ‘화(化)’에 대해 생각해보자. 『삼국유사』 〈단군기〉에서는 천리(天理)를 따라 세상을 변화시
키는 ‘재세이화’를 말하였다. 짧은 글에 ‘화’ 자가 7번이나 나온다. 『천부경』에서는 ‘무궤화삼(無
匱化三)’을, 진흥왕순수비에서는 ‘순풍(純風)’과 함께 ‘현화(玄化)’를, 최치원은 「지증대사비문」에
서 ‘은은상고지화(隱隱上古之化)’를 말하였다. 접화군생의 ‘화’가 우리 상고대의 전통을 이은 것임
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접화군생’ 넉 자의 함의(含意)와 역사적 내력이 간단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근대 민족종교에서는 이 ‘화’의 전통을 잘 포착하였다. 대종교 경전의 하나인 『회삼경(會三經)』
에서는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조화(造化: 철학과 종교)와 교화(敎化: 교육)와 치화(治化: 정치)
를 제시하였다. ‘화’는 가깝게는 ‘감화’, ‘교화’로부터 멀리는 ‘신화(神化)’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가
넓고 포괄적이지만 결국 ‘변화’라는 한 단어로 귀착된다. ‘화’는 어떤 변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人)
과 물(物)이 달라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의 문제다. 접화군생의
실체를 밝히는 열쇠가 여기에 있다.
완전한 인간은 이성과 감성, 나아가 영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풍류는 합리성·정감성·영명
성(靈明性)의 복합체다. 그리스 문화를 설명하면서, 로고스(logos)를 중심에 놓고 감성적 차원의
파토스(pathos)와 신화적 차원의 미토스(mythos)가 결합한 것이라고 보는 것과 흡사한 면이 있
다. 접화군생 역시 이 세 요소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풍류의 도를 사실상
국교로 삼아 국민정신의 함양에 힘썼던 화랑의 실천 강령을 살펴보자.
신라 화랑들은 ① 도의로써 상호 연마하고(相磨以道義), ② 노래와 음악으로써 서로 즐기며(相悅
以歌樂), ③ 명산대천을 찾아 노닐되 아무리 멀어도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遊娛山水, 無遠不至)고
한다. 60) ①이 이성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②는 감성 또는 정감에 관계되는 것이다. ③의 이유는 복
합적이다. 선경(仙境)을 찾아 삶의 여유를 갖기 위함일 수 있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 위함
59) 『역주 최치원전집』 1, 142-143쪽, 「대숭복사비명」; 257-258쪽, 「지증대사비명」 참조.
60) 『삼국사기』 권4, 진흥왕 37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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