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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최치원 「난랑비서(鸞郎碑序)」에 대한 검증  최영성



                   이것은 동방사상의 원천이 밝음(광명)과 열력(熱力)을 상징하는 ‘해’, 생명을 상징하는 ‘바람’이

                 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우리 민족의 ‘밝사상’, 즉 광명이세(光明理世)의 사상과 통한다
                 고 하겠다.



                    새벽 해가 우니(嵎尼: 동방)에서 떠오름에 광명이 만상(萬像)에 다 통하고, 봄바람이 진위(震位:

                    동방)에서 나옴에 기운이 팔방의 끝까지 흡족하다. 마침내 천하의 어둠을 깨뜨리고 지상(地上)
                    의 열매를 맺게 하고야 만다.         69)



                   이는 마테복음 제21장(33∼46)에 나오는 ‘열매 맺는 백성’을 연상하게 한다. 동방에 열매 맺는

                 백성들이 있을 것이요, 그 열매는 해와 바람이 맺게 해준다는 것이다. 해와 바람이 동방에서 나온
                 다는 점을 강조한 대목에서 최치원의 동방사상, 동인의식(東人意識)을 읽을 수 있다.

                   바람은 한국 고유신앙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풍백(風伯)이란 신격(神格)
                 을 들 수 있다. 바람은 대개 동·서양의 차이를 떠나 기식(氣息), 생명, 영혼을 의미한다. 또 신격으로

                 서의 바람은 전령신(傳令神), 즉 신의 사자(使者) 구실을 한다. 신과의 교접에 필요한 사람이 바람잡
                 이다. ‘바람잡이’는 본디 나쁜 의미의 말이 아니었다.

                   다시 ‘접’ 자에 담긴 의미에 주목해보자. ‘접’은 단순한 교접이나 만남을 의미하지 않는다. 종교
                 적 차원에서 해석하면 접신(接神)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접신이란 사람에게 신이 내려서

                 영혼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늘의 신령한 기운을 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접신의 경지
                 에 이르고, 그 경지가 고조되면 영가(詠歌)를 하고 무도(舞蹈)를 한다. 이런 영기(靈氣)가 주어지고

                 통할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사물이 된다. ‘기’로 표현할 수 있는 정감성과 ‘영’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영명성      70) 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다. 이처럼 ‘접’ 한 글자에 한국사상의 특성이 들어

                 있다.
                   한국사상은 합리성·정감성·신비성을 함께 지녔다는 데서 큰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풍류’

                 라는 말 자체의 함의(含意)에서 읽을 수 있다. 또 ‘접화군생’의 과화존신적(過化存神的)                           71)  신비성과
                 연관된다. 이 땅에서 유교가 성행함에 따라 우리 고유사상이 지닌 신비적 성격이 차츰 약화되어

                 간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사상에서 신비적 성격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라 할 것이다.
                 신비적 성격을 가진 풍류도였기에 최치원이 ‘현묘지도’라고 하였을 것이다.






                 69) 『역주 최치원전집』 2, 245쪽, 「故翻經證義大德圓測和尙諱日文」 “觀夫曉日出乎嵎尼, 光融萬像, 春風生乎震位, 氣浹
                 八埏. 遂能破天下之冥, 成地上之實. 然後烏飛迅影, 廻輪昧谷之深, 虎嘯雄威, 輟扇商郊之遠.”
                 70) 정신과 육체가 합일의 경지에 이르러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신비처를 말한다. 정약용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기
                 도 하다.
                 71) 성인(聖人)은 지나기만 해도 교화가 되고, 머물러 있기만 해도 주변이 신령하게 된다는 말. 『맹자』, 「진심(盡心)
                 上」 “夫君子, 所過者化, 所存者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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