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4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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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단재에 따르면, 낭가사상은 한민족의 원시종교인 수두제蘇塗祭신앙에서 유래하였으며, 단군은 단
군조선의 개창과 함께 구심점으로 수두제전을 개최하였다. 이것은 부여의 열린 영고와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삼한의 소도로 계승되었고, 고구려 태조가 ‘선배’제도로서 국가적 차원으로 발
전시켜 전통적 사상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28)
낭가사상은 환국 말기에 비롯되어 배달을 개척한 3천 명의 ‘제세핵랑’과 단군조선의 ‘국자랑’,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신라의 ‘화랑’으로 이어져 오다가, 고려의 9성 정벌 때는 항마군으로, 대몽
항쟁 시기는 삼별초로, ‘묘청의 난’ 때는 국풍파가 유학파에 패한 후로 사대주의의 소한사관에 ‘혼’
을 빼앗기면서 그 정신이 쇠잔해졌다. 29) 고려가 끝나고 유교사회의 조선이 들어선 후 낭가의 명맥
이 뒤안길로 사라졌으나, 그 정신만은 한민족의 역사의식 속에 뿌리 깊이 잠재되어 조선 시대의
선비정신, 동학정신, 구한말의 의병과 3.1혁명 등 민족의 위기 때마다 낭가의 의기를 떨치면서
근대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맥을 이어왔다. 낭가사상은 시대를 달리하며 명칭이 바뀌었지만 새 역
사 개척의 원동력으로 면면히 계승된 것이다. 30) 그리고 신라의 화랑제도는 바로 고구려 선배제도
를 모체로 하여 발전했다는 것이다. “낭은 곧 신라의 화랑이니, 화랑은 본래 상고 소도제단의 무사,
곧 그때에 ‘선비’라 칭하던 자인데, 고구려에서는 조의선인이라 하고, 신라에서는 미모를 취하여
화랑이라 하였다.”라는 낭가의 개념과 발전과정을 구명하였다. 31)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 ‘선배’의 유당들이 유풍을 보전하여 그 의무를 지켜왔으나, ‘선배’ 의
명칭을 유교에게 빼앗기고, 단발한 머리모양으로 재가화상在家和尙이란 잘못된 명칭을 얻게 된 것
이며, 그 후예들에게 전승되지 못해 조상의 옛 일을 점차 잊어버려 자가自家의 내력을 제대로 증명
하지 못한 것이다. ‘선배’ 경기의 일부분이 송도松都의 ‘수박手搏’인데, 수박이 중국의 ‘권법’이 되
었고, 일본으로 건너가 유도柔道가 되었다는 것이다. 32)
낭가사상을 실천한 사람으로 묘청과 윤관을 내 세운다. 단재는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
건」논문에서 낭가사상은 고려중기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다가 낭가사상의 대표자인 국풍파 묘청
이 유교사상의 대표자인 유학파 김부식에게 패하여 사대주의로 기울고, 민족이 쇠하는 계기가 되
었다는 것이다. 한편, 윤관은 1107년(예종 2년) 20만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여진 정벌과 9성城
을 설치하여 고려의 영토를 확장한 문관으로 국경에 침입한 여진족을 강력한 군대로 대처하여 두
만강 이북 지역의 영토를 개척하는 대업을 이룩하였다. 특히, 윤관은 『고려사』와 『지리지』에는
에 고운 최치원은 단도직입적으로 그 해답을 명쾌하게 선포한다. "우리민족에게는 고유한 현묘지도가 있으니(國有玄妙
之道), 그것을 우리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곧 "풍류다(曰風流)." 김용옥, 『노자가 옳았다』 (서울: 통나무, 2020), 81쪽:
네이버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b060128672fe4bc0975133ec1c86e89f (검색
일: 2022.4.20.)
28) 선배는 仙人및 先人의 우리말을 뜻한다. 문만기, 전게서, 3~4쪽.
29) 안경전, 『환단고기』 (대전: 상생출판, 2021), 498쪽.
30) 안경전, 전게서. 497~498쪽.
3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검색일: 2022.4.20.)
32) 신채호, 『朝鮮上古史 下』 (경기 부천시: 주식회사 부크크, 2018),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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