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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최치원 「난랑비서(鸞郎碑序)」에 대한 검증  최영성



                 Ⅳ. ‘접화군생(接化群生)’과 한국사상의 특질




                   접화군생은 한국 상고대의 ‘광명이세(光明理世)’,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을 포괄한 것이라고 본다. 광명이 곧 도요 도가 곧 광명이다. 밝은 빛은 ‘정대광명(正大光明)의
                 도’다. 인간은 이 도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광개토태왕비에서 선언한 ‘이도여치(以道輿治)’는 도를

                 가지고 천하〔寰輿〕를 다스린다는 말이요, 원효가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가〔歸一心源〕 모든 중
                 생이 이익되도록 한다〔饒益衆生〕”            56) 고 한 말은 궁극적으로 홍익인간과 다르지 않다. 중생의 한 마

                 음이 바로 ‘도’ 그것이기 때문이다. 말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정신과 사상은 하나로 연결된다.
                   접화군생은 일차적으로 ‘대인(對人)’, ‘대물(對物)’의 관계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였다. ‘접화’에

                 서의 ‘화’는 최치원의 「지증대사비문」 서두 부분에 나오는 ‘상고지화(上古之化)’의 ‘화’와 같은 것
                 으로, 『삼국유사』 〈단군기(檀君紀)〉에 나오는 ‘재세이화’의 ‘화’와도 의미가 통한다.                         57)  이 ‘화’에는
                 ‘교화’의 의미가 깔려 있지만 ‘감화’, ‘변화’의 의미가 더 크다. 더 나아가 ‘진화(進化)’, ‘신화(神化)’

                 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으며, ‘우화등선(羽化登仙)’의 ‘화’와도 연결시켜 해석할 수도 있다. 접화

                 에서의 ‘화’는 상호 교접을 통해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자리이타적(自利利他的)’ 변화를 추구
                 하는 것이다. 주객미분(主客未分)의 넓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접’은 바람의 숨결이 스쳐야 꽃봉오리를 맺는 풍접화(風接花)를 연상하게 한다. 남녀의 교접에

                 비유하는 것이 ‘접’의 원의(原義)에 가깝다. 남녀의 육체와 영혼이 하나로 만나 새로운 생명을 만들

                 어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접화’는 사람은 물론 동식물, 무기물 등 우주만물을 교접하
                 여 감화-교화-진화시켜 무명(無明)의 굴레를 풀어주고, 서로의 삶을 향상시켜 마침내 완성체로 거
                 듭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은 참고할 만하다.



                    ‘접화군생’은 ‘홍익인간’보다 그 뜻이 더욱 넓은 한국 고유의 ‘어짊’의 표현이요, 풍류도의 범생

                    물적인 생생(生生)의 자혜(慈惠)를 의미하는 말이다. 초목군생이나 동물에까지도 덕화(德化)를
                    베풀어 생을 동락동열(同樂同悅)하도록 하는 것을 ‘접화군생’이라고 표현한 까닭이다.                             58)




                   ‘접화군생’의 핵심 명제는 ‘생명〔生〕’과 ‘변화〔化〕’다. 중국 최고(最古)의 의서(醫書) 『소문(素
                 問)』에 ‘생생화화(生生化化)’란 말이 나온다. 낳고 또 낳아 생성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변화 또한 끊
                 임없이 이어진다는 의미다. 생성이 곧 변화요 변화가 생성이라는 의미를 시사한다. 즉, 생명의 탄

                 생으로 원초적 변화가 이루어지지만 새로운 탄생을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해 농사는 열매를 수확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 열매 속에는 새 출발의 씨가 들어 있다. 작은 ‘하


                 56) 본디 『법화경』,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 나오는 말이다.
                 57) 류승국, 『유가철학과 동방사상』,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0, 163쪽.
                 58) 도광순, 「한국의 전통적 교육가치관」, 『철학과 종교』, 현대종교문제연구소, 1981,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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