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6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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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나가 되게 된다. 무교가 이러한 역사를 밟아 왔다.
한국 선도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는 마고 선인의 이야기에도 인격신은 아니지만 8려의 음이 마
고성 사람들과 함께하였다. 마고성 사람들은 귀에 烏金이 있어 천음인 8려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
[耳有烏金具聞天音]에 63) 神仙, 仙人의 모습으로 살 수 있었다. 64)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늘
접신상태에 있었다는 말과 같다. 또 소리를 조절하는 것이 마고성 사람들의 관건이었는데 이는 늘
신과 함께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교와 선도가 한 몸이라는 사실은 선도를 이룬 환웅천왕이 태백산에서 올린 굿 과정에서 드러
난다. 환웅천왕은 풍백과 우사, 운사를 거느렸고 풍백은 거울에 천부경을 새겨서 앞으로 나갔고
우사는 신을 맞아 북을 두드리며 둥그렇게 춤을 추었고 우사는 백검을 차고 있었다. 65) 여기서 이른
바 천부인 3개가 등장한다. 거울과 북 그리고 칼이다. 거울과 칼은 현재도 무당이 굿을 할 때 굿
마당에서 설치해놓고 있고 칼은 직접 굿 춤을 출 때 쓰기도 한다. 거울은 明斗로 불리며 북두칠성과
해와 달이 통상 새겨져 있다. 북은 방울로 대체되어 있다.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서 소위 청동기 유
물로 무덤에서 통째로 나오는 것이 청동 거울과 방울 그리고 검이다. 66) 이는 무당이 쓰던 巫具라는
것이 통설이다. 환웅천왕의 굿 전통을 현재 무당이 잇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접신하여 신을 부리고 굿을 하고 점이나 보는 것을 무교의 모든 것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선도와 무교를 별개의 줄기로 보고 선도가 외래 사조의 범람으로 탄압을 받아
무교로 전락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보이는 무교의 모습은 의례로서의 무교이고 본
질은 신을 받아 선도에서 추구하는 심신의 완성에 이르는 것이다. 오늘날 무당들이 신령을 맑게
하고자 위하여 전국의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는 모습에서 심신완성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선도와 무교는 신을 공통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선도는 무교의 다른 말이라고 해도 무리
가 없다.
통상 고대에는 창업주와 창업한 나라를 동일시하였다. 『일연의 삼성기』에서 신시를 한웅천왕이
라고 하는 것이 한 사례다. 이능화는 환웅천왕을 신시로 바꿔 표현하여 신시가 무당이었다는 것을
아래와 같이 주장하였다.
“신시(환웅천왕)라는 것은 고대의 신권군주(神權君主)이니 즉 무당이다. 고대(古代)에 신에게
무제(巫祭)를 지내면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그래서 이를 신시(神市)라 하였으니 지금의 도당굿
63) 동학을 창건한 수운 최제우도 무극대도를 한알님의 소리[天音]를 처음 듣고 나서 얻을 수 있었다(『동경대전』 「포덕
문」, 「논학문」, 『용담유사』, 「권학가」, 「안심가」 ).
64) 박제상 지음, 김은수 번역·주해, 『부도지』, 한문화, 2003, 31~32쪽.
65) “世傳桓雄天王 巡駐於此 佃獵以祭 風伯 天符刻鏡而進 雨師 迎鼓環舞 雲師 佰劍陛衛 盖天帝就山之儀仗 若是之盛嚴也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66) 최일범, 「한국고대의 선도 전통」, 『선도의 맥을 찾아서』, 지혜의 나무, 2004,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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